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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4-28 07:44
PTSD로 취업·실업 반복, 산재 생존자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55  
사고 충격 후유증과 사회적 편견 ‘이중고’ … “산재 승인만큼 직업복귀도 관심 필요”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로 동생을 잃은 박철희(53)씨는 사고 이후 8년이 흐른 지금까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박씨는 당시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참사 현장에 있었다. 눈앞에서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일상생활이 무너졌다. 2년가량 산재 요양기간이 끝난 뒤에도 조선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전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노인 데이케어센터에 취업했지만 타인의 아픔과 죽음에 전보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 달 만에 센터를 그만뒀다. 조선소에서 일하기 전에 했던 택배 일을 다시 할 때도 불안이 밀려왔다. 터널에 진입하거나 강을 지나 다리를 건너는 순간 사고가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커졌다.

중대재해를 목격하거나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요양 종결 이후 일터와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4·28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을 맞아 PTSD 당사자들의 산재 이후 삶에 대해 들었다. 생존자이면서 목격자인 이들은 사고 충격에 따른 고통으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거나, 주변 동료들의 싸늘한 시선 탓에 부서를 옮겨야 했다. 전문가들은 산재 승인과 처리만큼 치료와 직업복귀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인식 부족, 복귀·지원에 ‘걸림돌’

일터와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PTSD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PTSD는 트라우마와 다르다. 충격적 사건으로 발생한 심리적 외상을 트라우마라고 하면, PTSD는 트라우마를 겪은 뒤 사건에 대한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사고를 침범하는 등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될 때를 말한다. PTSD라는 질병 자체에 대한 협소한 인식, 해당 질병이 산재일 수 있다는 이해 부족, 정신과 치료에 대한 선입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직업복귀의 문턱으로 자리하고 있다.

박씨는 사고 이후 상담치료나 직업복귀 관련 제도적 지원이 모두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담치료는 ‘요양종결 이후’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박씨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전직 지원 안내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담이라는 게 저한테는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아무리 무섭고 힘들어도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상담사)들 말은 약간 공염불처럼 들리는 거죠. 전직이나 이직 관련해서 (지원이나 교육 등 지원) 혜택을 받은 것도 없고, 그런 혜택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박씨만의 문제도 아니다. 2020년 10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노동자와 고 김용균씨 사고 목격자 등의 증언을 토대로 분석한 ‘노동재해 트라우마’ 자료집을 보면 40대 크레인 사고 피해노동자 A씨는 “울산에서 국비지원사업 관련해 조금 배워서 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하고 알아봤는데 이 도시가 너무 조선소·화학·자동차쪽으로 특성화된 지역이다 보니까 그 외에 딱히 들어갈 만한 곳이 없다”고 밝혔다. 30대 크레인 사고 피해노동자 B씨는 “1년 뭘 배우거나, 조그만 장사라도 시작할 수 있게 대출을 해 준다거나,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마창거제산추련은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 부재로 생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자괴감으로 이어지고 증상을 악화시킨다”며 “산재를 인정받은 경우에도 현행 제도에서는 트라우마에 대한 장애인정 기준이 현저하게 낮으며, 복귀지원 프로그램 지원대상에도 극히 일부만 포함돼 있어 노동자들에게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원직복직 이후 마주한 동료들의 싸늘한 시선

원래 일하던 일터로 돌아가도 문제는 남아 있다. 동료의 끼임 사망사고를 목격하고 PTSD를 앓았던 HD현대중공업 노동자 이대영(가명·45)씨는 2023년 복직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압박에 시달린 탓에 없던 피부병까지 생겼다. 온몸에 건선이 생긴 그는 결국 한 달가량 다시 휴직을 했다.

2020년 4월 울산 현대중공업 특수선에서 잠수함 어뢰발사관 덮개와 선체 유압도어 사이에 정규직 노동자 1명이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씨는 당시 동료의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재해자를 구조가 가능한 곳까지 옮겨야 했다. 사고 이후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실의에 빠져 살았다.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죄책감에 휩싸였다. 울컥 화가 치미는 등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고 악몽과 불면의 날을 보냈다.<본지 2020년 9월21일자 2면 “[불안·우울·불면, 목격자의 고통] 현대중공업 ‘끼임 사고’ 피해자 동료 3명 산재인정” 참조> 약물치료와 입원치료를 받고 나서 약 3년 만에 돌아간 일터에서는 동료들의 달갑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다.

“한 동료가 ‘아버지가 죽어도 일주일 정도 지나면 이겨내고 와서 일을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쉬었냐’는 식으로 말했어요. 회사도 다른 부서로 파견을 보내야 할 일이 생기면 우선순위로 보내더라고요. 산재 이후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제 과거를 모르는 조직으로 가서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2017년 현대중공업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이씨는 잠수함 관련 업무만 20년 넘게 한 ‘베테랑’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고로 고통을 겪고, ‘비자발적’으로 부서를 이동해야 했다.

산재노동자의 직업복귀율은 70%대 수준인데 원직복귀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마저도 대·중소기업, 고용형태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슈와쟁점 보고서 ‘산재노동자의 노동시장 지위 회복 실태와 정책적 과제’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패널조사 1~5차(2018~2022년)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재해 당시 노동시장 지위별로 원직복귀율 차이가 컸다. 대기업 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유노조 정규직은 70.23%였고,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14.76%에 불과했다.

“노동시간·업무량 줄인 단계적 복귀 제도 필요”

산재 승인율을 올리고 처리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직업복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정신질환을 포함한 직업병 문제에서 사회적 쟁점과 에너지가 인정기준에 지나치게 집중된 측면이 있다”며 “요양종결 이후 작업장에 어떻게 복귀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고, 복귀까지 고려해 노동의 특성에 맞는 치료와 재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환자 아니면 노동자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단계적 복귀’를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직업복귀 과정에서) ‘어제까지는 환자, 오늘부터는 노동자’ 이렇게 딱 나눠질 수 없다”며 “노동시간이나 업무량 측면에서 단계적으로 직업복귀를 할 수 있도록 인식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정신건강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주의 예방의무를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재광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필)는 “보건조치(39조)에 정신건강 침해 방지를 위한 예방 의무를 부여해 실효성 있는 사업주 의무를 명문화해야 한다”며 “작업중지 요건에도 ‘정신적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이 있을 때를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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