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6-23 09:51
[단독] 고 김충현씨 사고, ‘원청’ 서부발전 지시 있었다
|
|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5
|
임대차계약서 “서부발전 지시 따라 한전KPS 비용으로 위험방지 필요 조치”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충현(50)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사고장소를 임대했을 뿐이라고 밝혀 온 한국서부발전이 한전KPS 업무에 관여했을 소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서부발전이 경상정비공사를 위탁한 한전KPS의 하청업체인 한국파워O&M 소속이었다. 따라서 공사를 맡긴 ‘서부발전’, 하청업체와 직접적인 도급 관계에 있는 ‘한전KPS’ 두 공기업 중 어떤 회사가 원청에 해당할지 관심이 쏠려 왔다.
공기구 ‘소유주’ 서부발전, 관리 책임 한전KPS
서부발전이 단순한 발주자 또는 임대인에 해당한다고 해석되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한전KPS의 경우 업무지시 정황이 다수 드러난 상태라 수사결과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 서부발전은 공간(종합정비동)을 임대했다는 입장이었는데, 설비(기계) 소유 여부에 대한 해명은 명확치 않았다.
19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태안 9·10호기 기전설비 경상정비공사 전용공기구(공작기계)’ 임대차계약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갑)와 기전설비 경상정비 업체인 한전KPS(을) 간 무상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다. 계약서에는 ‘전용공기구 및 공작기계 소유주’가 서부발전으로 명시돼 있다. 또 한전KPS가 공기구에 대해 발전설비 경상보수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만 사용한다고 정했다.
특히 한전KPS의 관리의무가 자세하게 기재됐다. 계약서의 ‘임차인의 관리의무’를 보면 “을(한전KPS)은 본 공기구를 사용함에 있어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서 유지·관리하고 임차권을 양도하거나 공기구를 전대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다. 아울러 공기구가 멸실·훼손되면 지체없이 서부발전에 통보하도록 했고, 한전KPS의 귀책사유가 생기면 서부발전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서부발전의 ‘지시’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계약서에는 “한전KPS가 공기구 안전관리에 주의하고 서부발전의 지시에 따라 한전KPS의 비용으로 위험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부발전의 동의나 승낙 없이 목적 이외 공기구 사용이나 공기구 전대·개조행위를 했을 때는 서부발전이 즉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공기구 관리 책임 역시 한전KPS에 귀속됐다. 서부발전이 공기구를 점검할 수 있고, 천재지변이나 화재 등으로 발생한 한전KPS 손해에 대해 서부발전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정했다.
외관은 ‘임대차’ 실질은 ‘도급계약’ 가능성
계약서 내용만 놓고 보면 서부발전과 한전KPS의 계약 형태는 외관상 ‘임대차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도급계약’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안화력 발전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도급인’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한 경우 원청이 수급인(하청)에 대한 안전조치 의무를 부담한다. 반면에 건설공사 ‘발주자’로 해석되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법원은 발주자 요건을 엄격하게 따지는 추세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선고한 ‘인천항만공사’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 예방과 관련된 유해·위험요소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했다면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도급인-발주자 기준을 구체화했다. 대법원은 △유해·위험요소에 대해 실질적 지배·관리 권한 여부 △도급 사업주의 실질적 영향력 정도 △도급 사업주의 공사 전문성과 시공능력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 체계나 입법 경위 등을 종합해 고려해야 한다고 기준을 세웠다.
같은 발전소인 중부발전 안전보건 관리책임자에 대한 법원 판단도 비슷하다. 2심 법원은 지난해 4월 신서천화력발전소 건설공사 현장에서 배연탈황설비 공사 중 전기 폭발로 40대 하청노동자 1명이 숨진 사고로 중부발전 건설본부장이 기소된 사건에서 중부발전을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로 봤다. 해당 공사가 중부발전의 필수적인 공사이고, 중부발전이 예산·인력·기술에 상당한 전문성이 있는데도 예산 절감이나 위험 회피를 이유로 도급했다는 것이다.
서부발전 ‘소유’ 부정했다가 “수사결과 봐야”
서부발전의 입장은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사고 초기 본지에 “정비동의 시설은 한전KPS가 관리하고 있어 서부발전 소유로 볼 수 없다”고 답변했다가 이날 통화에서는 “계약 내용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됐는지는 수사당국의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며 모호하게 해명했다. 한전KPS 관계자는 “수사당국의 수사,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한전KPS의 업무지시 정황은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라 서부발전의 공사 관여 여부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 한전KPS 관계자가 김씨에게 부품 작업을 의뢰한 2017년 12월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공개했다. 돌발작업이 아닌데도 한전KPS가 TBM(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ool Box Meeting)도 거치지 않고 지시했다고 대책위는 주장했다. 한전KPS에 공간 관리와 운영 책임이 있다는 근거로 보인다. 한전KPS에 대한 서부발전의 작업 의뢰 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는 서부발전의 지배·관리 책임이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조재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조안전 대표)는 “임대차계약서만 보더라도 한전KPS가 임차 공기구의 안전관리에 주의하고, 서부발전 지시에 따라 한전KPS의 비용으로 위험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 자체로 기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 책임이 한전KPS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부발전에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운영 책임이 한전KPS에 있다고 하더라도 지배·관리책임은 중복적으로 서부발전과 한전KPS에 있다고 보인다”고 해석했다.
노동부, 서부발전 지배·관리 여부 초점 “수사 대상 포함”
고용노동부도 서부발전의 지배·관리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동부 중대산업재해 수사 담당 근로감독관과 충남경찰청 형사기동대 등 80명은 16일 오전 10시부터 서부발전과 한전KPS·한국파워O&M 본사 및 현장사무실 등에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가 심야까지 증거 확보에 주력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서부발전이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는 자체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살펴본다는 의미”라며 “서부발전·한전KPS의 책임 여부를 모두 포함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서부발전과 한전KPS는 이날 조간신문에 사과문을 냈다. 서부발전은 이정복 대표이사 명의로 “공공기관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서부발전은 회사 차원에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으며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관련 기관과 함께 사고 수습 및 원인 파악을 위한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으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한전KPS도 김홍연 사장과 임직원 일동 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이번 사고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공기업 사과문에는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