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06 08:34
영상 두 번 보고 산불 진압 “우리 특수·전문진화대원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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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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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훈련 부재에 노동자·시민 안전 위협 … “제도 개선 논의에 노동자 목소리 반영해야”
지난달 21일부터 열흘간 발생한 산불은 인명과 재산에서 최대 피해를 내면서 역대 최악의 재난으로 남게 됐다. 이상기온과 건조한 대기환경으로 초대형 산불 위험이 높아지며 산불 대응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산불 재난 최일선에서 일하는 진화대원이 제대로 된 교육과 장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산림청 공무직인 산불재난특수진화대가 조합원으로 있는 공공운수노조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산불 현장에 투입됐던 진화대원들은 “교육·훈련 체계를 구축하고 안전 장비를 확충하는 재난 대응체계 강화”를 주문했다.
“이번 산불, 날 살린 건 교육 아닌 동료들”
산불 대응을 관할하는 산림청 진화인력은 공무원인 공중진화대, 공무직인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산림청 직접일자리사업으로 산림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기간제 노동자 산불전문예방진화대로 나뉜다. 100여명뿐인 공중진화대가 헬기로 앞서나가며 주불을 잡으면 특수진화대가 지상에서 뒤쪽과 옆으로 나가는 불길을 끄고, 예방진화대가 불씨와 잔불을 제거해 뒷불을 감시한다. 소방대원은 인명구조와 민가 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산불 소화에는 특수·예방진화대원이 투입된다.
문제는 재난에 대처하는 소방관·경찰과 달리 진화대원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훈련 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입사해 두 차례 교육을 받고 이번 산청 산불 현장에 투입된 김아무개(31) 특수진화대원도 “입사 뒤 산림청이 제공한 교육은 외부기관 강사가 영상을 틀어 주는 것이었다”며 “현장에 필요한 교육은 동료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대형 산불현장에서 살아남게 해 준 건 산림청 교육이 아니었다”며 “팀원들이 매일같이 해 줬던 교육과 인수인계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기간제 노동자인 예방진화대원도 관련 지침에 따라 10시간 사전교육을 받고 현장에 배치될 뿐이다.
반면 신임 소방공무원은 직렬에 따라 중앙소방학교에서 12주 혹은 24주의 교육을 받고 소방서에 배치된다. 21주간 화재진압과 구조·구급 교육 후 3주간 소방관서 실습도 한다. 신임경찰관도 중앙경찰학교에서 28주간 교내교육과 10주간 현장실습을 받는다. 소방기본법과 경찰공무원법에 교육시설 설치 근거가 명시돼 있어 교육권이 보장된다. 교육내용·과정 등 세부사항은 대통령령이나 행정규칙에 위임하고 있다.
진화대원은 부재한 교육체계로 발생하는 사고 위험과 재난대응의 부담감을 오롯이 떠안는다. 9년차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인 신현훈 노조 산림청지회장은 “진화대원 이름에 전문·특수라는 이름이 들어가지만 우리는 정말 전문적이었을까, 특수했을까 산불을 끄며 이런 고민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 “혹시라도 우리가 전문적이지 못해 빚어진 피해로 사람들이 죽고 재산을 잃은 것이 아닌가 늘 마음이 편치 않다”고 토로했다.
박봉에 이탈하는 청년 진화대원
곰팡이 핀 안전모, 헐거운 안전화
산불은 봄가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지만 진화대원들은 여름에는 장마에 따른 산사태 위험을 관리하고, 겨울에는 농업 부산물을 제거해 쓰레기 소각으로 발생하는 산불을 예방한다. 이런 현장 출동 시간 외 대기시간도 상당한데 교육훈련이 없다 보니 진화대원이 자구책으로 교육훈련과 체력단련·장비점검 등을 한다. 그런데 지자체나 국유림관리소는 재난대응을 준비하는 대기시간에 진화대원을 동원해 벌초를 시키는 등 민원업무에 투입시키는 일도 부지기수다.
전남 장흥군 소속으로 지난해까지 예방전문진화대로 일한 방남철(63)씨는 “지난해 수목제거 작업을 하다 진화대원 한 분이 돌아가시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방씨는 “사망 당시는 언론이 달려들었지만 몇 달이 지나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해졌다”며 “부디 이번에는 진화대원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고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해 달라”고 간청했다.
처우개선도 과제다. 특수진화대원은 공무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로 인식돼 적지 않은 청년이 들어오지만 열악한 처우 탓에 이탈률이 높다. 근속수당이나 호봉제가 없어 장기근속 유인책이 없다 보니 공무직으로 경력을 쌓다 소방·경찰공무원으로 이직한다. 1년에 평균 130차례로 외근이 많지만 출장비도 없고 위험수당·가족수당도 없어 박탈감에 시달린다.
휴가나 보상제도도 문제다. 진화대원은 현장업무가 많아 잦은 부상에 시달리지만 산재 신청까지 이르기는 어렵다. 소방공무원 등 공무원은 공무상 재해로 휴직할 경우 봉급과 수당 전액을 지급하지만 공무직·기간제 노동자인 진화대원은 70%의 휴업급여만 지급받는 탓이다. 특수진화대원은 연 132만원의 명절휴가비와 복지포인트 50만원을 제외하고는 지난해 기준 월 270만원의 기본급과 월 14만원의 급식비가 전부다. 산재를 인정받더라도 생계비 부족을 감내해야 한다.
노후화한 장비 개선·확충도 시급하다. 제대로 된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아 진화대원들은 사비로 장비를 구입한다고 입을 모았다. 2년차 특수진화대원인 김기명(가명·34)씨는 “최근 지급받은 안전화는 5단위가 없어 헐겁거나 작아 사비로 등산화를 구입하고 있다”며 “연기를 막아줄 보안경도 구멍이 많아 고글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진화대원도 “산림청에서 지급한 안전모가 내구연한이 지나 곰팡이가 피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진화대원 건강 추적관리해야”
노조는 이날 진화대원의 안전과 전문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요구안을 제시했다. 산불 진화와 대응이 정부부처 간 협력과 지방·중앙정부와 산림청, 소방청, 군과 경찰 등 여러 기관의 합동대응으로 이뤄지는 만큼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제도개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진화대원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예방진화대원의 경우 지자체마다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이가 발생해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체계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재난 현장에서 일하는 진화대원에 대한 심리치료지원·건강예방 중요성도 부각된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화재로 인한 연기에는 다수의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포함돼 있는데 특히나 제대로 된 보호장구가 없는 진화대원은 소방대원보다 훨씬 많은 유해물질에 노출돼 왔을 것”이라며 “이들의 호흡기와 심혈관계와 관련된 건강위험을 추적하고 관찰해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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