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16 15:01
[건설재해자의 딸들 ②] ‘예식장 계약’하던 날 아버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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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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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모 없이 13미터 공장 지붕서 추락 …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돼 대표 기소
응급구조사 딸의 걱정에 아버지 “높은 곳 무서워”
그날은 설렘이 가득한 날이었다. 효진(28)씨는 지난해 4월18일 서울에 있는 예식장과 결혼식 계약서를 썼다. 나흘 전 아버지 강대규(사망 당시 64세)씨에게 그토록 바라던 결혼 승낙도 받았기에 더욱 들떴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 오전 11시께 한 통의 전화로 모든 ‘행복’은 산산조각이 났다.
휴대전화 속 어머니의 목소리는 매우 다급했다. “계약서 작성 도중에도 두세 통의 전화가 왔어요. 계약서 다 쓰고 아빠한테 결혼식 날짜를 알려주려고 생각했어요. 엄마한테 일단 먼저 전화했는데 ‘빨리 집에 와. 아빠가 높은 데서 떨어져서 돌아가셨단다’라고 말하며 엄마가 울었어요.” 효진씨는 예비신랑과 텅 빈 예식장에서 멍하게 서로 쳐다보다가 울면서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일하던 경북의 한 공사현장으로 급히 내려갔다. 강씨는 이미 차디찬 영안실에 누워있었다. 효진씨는 응급실에서 회사 관계자로 보이는 3명과 처음 마주쳤다. 그런데 들리는 말이 황당했다. “회사 직원이 ‘생긴 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영세한 회사’라고 말했어요.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게 아니라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했잖아요.” 효진씨는 황망한 중에서도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후 회사 관계자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응급구조사였던 효진씨는 직업 특성상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을 자주 접했다. 대학 시절 응급실 실습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를 처음 마주했다. 전봇대에서 떨어지거나 공장에서 팔이 다친 이주노동자들도 수없이 접했다. 그렇기에 평소 아버지에게 “항상 몸조심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하지만 아버지 강씨는 ‘잔소리’로 생각했다고 한다. 효진씨는 “그런데도 아빠가 높은데 올라가면 등골이 오싹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회상했다.
사고 원인 ‘깜깜이’
경찰·노동부 “수사자료 왜 보려고?”
강씨는 서울시 소재 화재복구 전문 건설업체인 B사 소속 일용직 노동자였다. S사가 발주한 화재복구공사에 투입돼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일 강씨는 공장 2개 동의 지붕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지붕 패널을 제거 후 새 패널을 설치하다가 약 13미터 아래 공장 내부 바닥으로 추락했다. 건설현장 숙련공이었던 아버지가 왜 사고를 당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효진씨는 장례 이튿날 직접 현장에 달려갔다.
추락한 공장은 아찔했다. 효진씨는 “10미터가 무조건 넘을 정도로 지붕은 높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안전대가 없었고, 안전모는 비닐에 싸인 채 구석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사망원인을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이내 벽에 막혔다.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중대재해조사보고서·재해조사의견서 등 수사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은 오히려 “자료를 왜 보려고 하느냐”고 타박했다. 수사 당국이 파악한 사고 높이(119 10미터·경찰 15미터)도 제각각이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받은 자료는 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재해조사의견서’와 검찰 공소장에 그쳤다. 경찰의 수사결과보고서는 받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회사가 노동부에 제출해야 하는 ‘산업재해조사표’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효진씨가 지난달 노동부 영주지청에 산재조사표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지청은 산재조사표가 등록되지 않았다고 회신했다. 지청 관계자는 “사업주가 정신이 없어 빠뜨렸을 수도 있다”고 황당한 답변만 했다고 한다.
‘안전모·안전대·추락방호망’ 전무했던 현장
그나마 재해조사의견서를 보고 나서야 사고경위가 조금이나마 이해됐다. 재해조사의견서에 따르면 사고 당시 공장 지붕 위에는 강씨를 포함해 패널공 2명이 있었다. 지상에는 패널 줄걸이 작업을 하는 노동자 1명과 이동식 크레인 기사 1명이 지켜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별 작업을 배치하지 않은 채 현장 상황에 따라 달리 운영됐다. 이에 강씨는 ‘신호수’ 역할을 하면서도 동료작업자 2명과 함께 패널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동료 2명이 지붕 위에서 크레인에 매달려 내려오는 패널을 잡은 상황에서 패널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강씨를 충격했다. 폭이 약 20센티미터에 불과한 지붕 철골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강씨는 그대로 추락했다. 강씨를 때린 패널의 무게는 약 66킬로그램에 달했다. 강씨는 대동맥이 파열되는 ‘외상성 대동맥 박리’로 그날 오전 11시22분께 세상을 떠났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추락 위험이 있는데도 공장 내외부에 ‘추락방호망’이 설치되지 않았고, 안전대 부착설비도 없었다. 중량물 취급작업에 따른 작업계획서와 작업지휘자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현장 작업자 판단에만 의존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보호구 지급 등을 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을 위반한 정황이 많았다.
수사는 더뎠다. 대구지검 상주지청은 사고 발생 약 1년여 만인 올해 3월11일 B사 대표 A씨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현장소장과 패널 시공 관리 과장은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해 1월27일 50명 미만 사업장(건설공사금액 50억원)으로 확대 적용된 이후 일어난 사고라 대표가 재판에 넘겨질 수 있었다.
기소되자 합의 요청 “막을 수 있었던 사고”
대표 A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상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 위반이 다수 적발됐다. 검찰은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 방침 마련(4조1호)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 △재해예방 예산 편성 및 집행(4조4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 △중대재해 발생시 작업 중지 등 매뉴얼 마련(4조8호) 등 시행령 규정 5가지를 위반했다고 봤다.
회사쪽은 기소돼서야 유족에 합의하려고 시도했다. A씨 변호사는 기소 사흘 뒤 유족쪽 변호사에게 연락해 “형사합의금을 준비할 수 있다고 연락받았다”고 했다. 유족은 최근 민형사 부제소 합의와 처벌불원 의사를 포함해 합의했다. 하지만 효진씨는 사업주의 재판을 두 눈으로 보고 직접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고 한다.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효진씨는 사고 당일 예식장 계약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리지 못한 것이 사무치게 후회된다. “아빠에게 안전대가 지급되고 추락방호망이 설치됐더라면 충분히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예요. 언제까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죽음이 반복돼야 하며 얼마나 더 많은 사망자와 유족들이 생겨나야 하나요. 산재 유족이 되니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법인지 의문이 들어요. 현존하는 법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처벌이 이뤄져야 합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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