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보연·퀴어동네 실태조사 … 자살 시도 일반인구집단 대비 4.5배
성소수자 노동자 4명 중 1명은 우울증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터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듣는 등 차별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직장내 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5명 중 1명 꼴이었다. 노동현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어떻게 이뤄지고, 정신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연구 결과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4명 중 1명 우울증상, 차별 경험과 ‘상관관계’
27일 <매일노동뉴스>가 확보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의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자살사고)고 답한 성소수자 노동자는 17.9%로 5명 중 1명꼴이었다. ‘최근 1년 동안 실제로 자살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자살시도)고 답한 응답도 3.1%나 됐다. 일반인구집단(연령보정)에 비해 각각 3.6배, 4.5배 높은 수치다. 해당 조사는 만 19세 이상 65세 미만 노동자인 성소수자 72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16일부터 약 한 달간 온라인으로 실시됐다. 연구진은 같은해 7~10월 19명에 대한 면접조사도 별도로 진행했다.
성소수자 노동자 4명 중 1명(24.6%)은 우울증상이 있고, 10명 중 6명 이상(66.5%)이 수면장애를 겪었다. 일반인구집단(연령보정)과 비교했을 때 각각 4.3배, 3.2배 높았다.
특히 우울증상은 일터 내 차별 경험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차별을 겪은 30~40%에서 우울증상이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직장에서 성소수자가 아닌 척 꾸며내기 위해 거짓말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76.4%로 대부분이었다. ‘성소수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치료받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다’거나 ‘직장 동료나 단체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내용이나 광고에서 퀴어에 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접한 적이 있다’는 응답 비율도 각각 39.2%, 36.1%였다.
교육기관에서 일하는 30대 A씨는 “같이 일하던 분이 제 정체성을 모르고 ‘(동성애자가) 너무 불편하고 꺼림칙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30대 레즈비언 B씨는 “회사가 가족친화경영을 (지향)해서 지원을 잘해 주는 편”이라며 “그런데 아무리 좋은 복지제도가 있어도 저는 전혀 받을 수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들은 직장내 폭력에도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한 달간 △언어폭력 △원하지 않는 성적 관심 △위협 △모욕적 행위 중 1가지 이상을 경험했다는 성소수자 노동자는 31.1%였다. 1년간 △신체적 폭력 △성희롱 △왕따·괴롭힘 중 1가지 이상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19.3%였다. 이는 각각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5배·28배 높은 수치다. 특히 전문직·사무직의 경우 ‘1년 이내 왕따·괴롭힘 경험’이 일반인구집단보다 96.25배나 높았다.
임금차별이나 불공정한 업무분배 같은 부당한 경험을 당해도 10명 중 7명 정도(73.9%)가 ‘참거나 묵인한다’고 답했다. 참거나 묵인하는 이유에 ‘항의나 신고를 하면 오히려 피해를 입을 것 같아서’가 42.7%로 가장 많았는데, ‘대응을 하면 내가 성소수자인 것이 밝혀져서’도 7.3%나 됐다.
“차별해소 위한 제도·조직문화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일터 내 차별 경험이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지는 만큼 차별해소를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책임자인 양문영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 의사는 “이들이 겪는 일터에서의 차별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이나 비정규직으로서 경험하는 차별이 중층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라며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일터를 만드는 것은 곧 전체 노동환경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은 법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명문화해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신호를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연구책임자 타리(활동명) 공인노무사(퀴어동네)는 “법·제도 개선, 조직 내 교육 모두 중요하지만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한 주체로서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며 “개개인이 직장 동료로서 내 옆에도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 나갈 것인지, 즉 ‘앨라이(연대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