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6-06-21 13:28
|
전태일이 기다렸던, 노동감독관들이 찾아왔다
|
|
|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59
|
신규 노동감독관 직무교육으로 전태일기념관 견학 … “56년 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감독관 있었다면…”
김학태 기자 입력 2026.06.19 06:30
근로기준법이 법전에서나 근로기준법이었던 것처럼, 전태일 열사 눈에 비친 근로감독관(현 노동감독관)은 ‘근로감독관’이 아니었다. 전태일과 친구들은 1970년 10월6일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 개선’ 진정을 넣었다. 돌아온 것은 근로감독관들의 회유와 멸시 그리고 배신이었다.
전태일이 한자투성이 근로기준법을 읽어줄 대학생 친구를 간절히 원했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근로감독관도 간절했다. 전태일이 그토록 기다렸던 근로감독관, 노동감독관으로 이름을 바꾼 그들이 전태일을 찾았다.
“뚝딱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아, 들어주고 공감해 달라”
불편한 선배 감독관들의 과거 “죄송한 마음, 반복 말아야”
고용노동부 신규 노동감독관 50여명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열사를 만났다. 노동부는 올해부터 신규감독관 직무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전태일기념관 견학을 넣었다. 올해 7급 수시공채로 선발한 노동감독관 490명(노동 210명, 산업안전 280명)과 임기제 산업안전감독관 100여명 등 올해에만 12회에 걸쳐 600여명이 기념관을 방문한다.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이 주관하고 있다.
이날 견학 프로그램의 첫 순서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기념관장의 강의. 전 관장은 전태일이 노동청에 진정서를 냈지만 근로감독관들의 회유와 배신에 절망한 나머지 산화했던 일을 얘기했다.
전태일이 진정서를 낸 다음날인 1970년 10월7일, 경향신문은 사회면 톱에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화들짝 놀란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은 같은달 중순 전태일과 친구들을 찾아와 회유했다. “취직을 하면 일주일 내에 (근로조건을) 개선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전태일과 친구들은 그 말을 믿고 급히 취직을 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태일과 친구들은 노동청 국정감사날인 20일 노동청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고, 노동청은 “근로감독권을 강력히 발휘하겠다”며 또 회유했다. 전태일은 국정감사가 끝난 뒤 근로감독관을 찾아갔는데, 감독관은 “포기해라. 이제 국정감사도 끝났으니 어디 너 할 대로 해보라”며 말을 바꿨다. 분노한 전태일과 친구들은 평화시장 내 집회를 계획했지만 경찰의 방해로 번번히 실패했다. 결국 전태일은 그해 11월13일 스스로를 불살랐다.
“전태일은 감독관의 그 말 한마디에 죽었어요. 희망이 하나도 안 보인 거죠.”
전순옥 관장은 “(당시 근로감독관이) 들어줬으면, 그리고 함께 공감해 줬으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신규 노동감독관들에게 당부했다.
“노동자들이 얘기한 것을 금방 뚝딱하고 해결해 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돼요. 약자의 편에서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고민해 준다면 전태일처럼 절망에 빠져서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56년 전의 일이지만, 전태일의 희망을 꺾었던 근로감독관은 신규 노동감독관들의 선배다. 후배들에겐 ‘불편한 진실’이다.
신혜리(27) 감독관은 “전순옥 관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죄송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며 “전태일 열사의 희생으로 많은 법령이 개정되고, 근로감독관이 노동감독관이 된 것 아니겠나.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승민(35) 감독관은 “감독관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근로자일 뿐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이 걸린 일 아니겠냐”며 “감독관을 시작하면 여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텐데 하나하나의 사연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청계천 전태일 흉상 앞 기념촬영도
“노동감독관의 무게 깨닫길 기대”
강의가 끝나자 ‘노동인권 체험교육’이 시작됐다. 신규 노동감독관들은 해설자를 따라 기념관 건물 입구 왼편을 지키고 있는, 근로기준법 책을 들고 있는 미래로 나오는 전태일 동상 앞에 모였다. 공교롭게도 전태일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건물이다.
해설자는 길바닥에 새겨진 달팽이 모양 동판을 가리켰다. “노동환경을 바꾸기 어렵더라도 달팽이처럼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자는 뜻이에요.”
다음은 건물 3층 상설전시실. 전태일의 일생과 유품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 해설자는 신규감독관 20여명을 옛 전태일과 시다들의 작업장이었던 평화시장 다락방처럼 꾸민 곳으로 들어가게 했다. 1.5미터 높이의 다락방에서는 허리조차 펼 수 없다.
“여기가 몇 평인줄 아세요? 네 평이에요. 여기서 20명이 일했어요.”
“아…!” 신규 노동감독관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전시장에서 전태일의 일기를 봤다는 유승민 감독관은 “진심을 다한 글은 감동과 울림을 주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고 전했다.
상설전시관을 떠난 신규 노동감독관들은 버스를 타고 청계천 전태일다리로 이동했다. 전태일 흉상 앞에 모여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바닥에 깔린 동판들을 살핀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청계천에 올 때마다 흉상을 보고 갔다는 신혜리 감독관은 “그 어린 나이에 노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남들의 인권을 위해 희생하신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곤 했다”며 “나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감독관들은 전태일과 그 친구들이 자주 갔다는 명보다방(현 명보커피숍)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견학한 내용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박해웅(27) 감독관은 “내가 해야 할 노동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였다”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우리(감독관)의 노동철학을 확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구현경 노동부 근로감독협력과장은 “노동감독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삶을 지킨다는 사명감이고, 이를 삶으로 보여준 이가 전태일이기 때문에 기념관 견학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민원인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자신이 작성하는 서류 한 장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