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따라 갈리는 직업훈련 선택지 … 아르바이트 허용 시간도 제각각
우다영 기자 입력 2026.10.02 06:30
정부가 청년들의 취업을 돕겠다며 설계한 직업훈련에서 훈련수당이 26년째 월 20만원에 머물러 있다. 고용보험 미가입 상태여야 훈련을 받을 수 있어,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청년들은 몰래 야간근무를 하다 쓰러지기도 한다.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청년들은 교육을 포기하거나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나쁜 일자리로 몰린다. 청년 직업훈련 제도의 실태를 살펴본다.<편집자>
취업을 위해 직업교육을 받고 싶었던 20대 김도윤(가명)씨는 교육 대신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받고 싶었던 직업교육이 있었지만 교육기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는 조건이 걸렸다. 부모에게 생활비를 지원받기도 어려웠다. 김씨는 “교육을 받으면 아르바이트를 못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며 “지금은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받고 싶었던 교육은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교육이었다.
취업을 위해 무엇을 배울지 고르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노동부가 청년에게 다양한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있지만 어떤 훈련을 택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지원금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진다.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하는 청년에게 이 차이는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할 훈련보다 몇 달 동안 먹고살 수 있는 조건을 먼저 골라야 하는 ‘기회의 격차’가 된다.
취업하려면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돈’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직업교육을 찾는 이유는 채용시장에서 부족한 기술과 자격을 채우기 위해서다. 20대 윤경하(가명)씨는 “경험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기술 사용 능력이나 자격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부족한 기술을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비용 부담이 커 노동부 지원 교육을 찾았다”고 전했다.
하윤수(가명)씨도 비용 때문에 정부 지원 직업교육으로 눈을 돌렸다고 했다. 퇴사 뒤 새로운 진로를 찾았지만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은 데다 경력 공백도 있었다. 하씨는 “서류에 쓸 스펙 한 줄이라도 필요했고 취업하려면 뭐라도 배워야 했다”고 토로했다.
윤수씨가 원하는 직종의 취업 기회가 있는 유명 사설 교육기관은 3개월 과정 교육비가 대학 등록금에 맞먹었다. 그는 “교육도 듣고 교육비도 받고 취업도 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고 직업교육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교육비를 지원받는다고 훈련기간 필요한 돈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월세와 식비, 교통비와 통신비는 고정돼 있다. 윤수씨는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혹했지만 지원금은 버스비로 절반 이상이 나가 씁쓸했다”고 한숨 지었다.
정부 지원금에 따라서 제동이 걸리는 사례도 있다.
최민경(가명)씨는 대학 재학 당시 생활비가 부족해 한국장학재단의 중소기업 취업연계장학금을 받고 있었다. 대학 취업상담에서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권유를 받고 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 교육에 참여했지만 훈련수당은 함께 받을 수 없었다.
최씨는 “취업하려면 뭐든 배울 게 많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해서 신청한 지원금”이라며 “결국 컨소시엄 교육 하나를 받으면서 장학금은 생활비로 다 써야 해 아쉬웠다”고 귀띔했다. 최씨가 받은 지원금은 중소기업에 취업해 근로를 제공해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교육 하나를 끝낸다고 취업준비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30대 강지윤(가명)씨는 “직업교육을 다 받고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토익 점수가 요구돼 또 다른 벽이 있었다”며 “토익을 준비하려면 강의비와 응시료도 부담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 직업훈련기관 훈련생은 생활비를 벌어야 해 교육을 끝까지 이수하지 못했는데, 이후 취업 과정에서 해당 기관 교육을 수료했다고 이력서에 허위로 적은 사실이 적발됐다.
기준 제각각, 선택지 좁은 직업훈련
노동부 직업훈련은 목적과 대상에 따라 여러 조건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이 차이가 훈련기간 생계를 유지할 조건까지 달리한다는 점이다.
가장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내일배움카드 일반직종훈련에는 약 3만개 과정이 있다. 사무·회계·조리·미용 등 다양한 직무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140시간 이상 훈련에 참여하는 실업자나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 등이 받을 수 있는 훈련장려금은 월 최대 11만6천원이다. 주 15시간 이상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훈련 자격을 상실하는 건 아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근로시간을 늘리면 장려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자만 지원금을 받는 셈이다.
정부가 인력양성을 집중 지원하는 분야로 가면 받을 수 있는 돈이 늘어난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디지털 신기술을 가르치는 K-디지털 트레이닝(KDT)은 훈련장려금이 월 최대 20만원이고, 장관이 지정하는 과정에는 특별훈련수당이 추가된다. 산업구조 변화 대응 등 특화훈련도 지역별 육성산업·직종의 일정 요건을 갖춘 장기과정에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훈련장려금을 받으려면 주 15시간 미만 근로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협약기업으로 취업이 사실상 보장되는 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 채용예정자 훈련은 훈련수당을 최대 30만원(식대 포함)까지만 받을 수 있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 이 사업 훈련은 훈련수당을 포기하고 실업급여 등 다른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두고 있지만 ‘고용보험 미가입’ 조건이라는 이유에서 취업준비생이 참여할 수 있는 노동부 교육사업 중 유일하게 아르바이트가 제한돼 있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도입된 K-뉴딜 아카데미는 또 다르다. 대기업이나 업종·지역별 주요 기업이 직접 프로그램을 설계·운영하고 참여 청년에게 수도권 월 30만원, 비수도권 월 50만원을 지급한다. 아르바이트도 주 30시간 미만까지 가능하다. 기존 사업 조건보다 더 완화됐다.
즉 어떤 청년은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훈련장려금을 받을 수 없는데, 다른 청년은 그 두 배에 가까운 시간까지 일하면서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를 차별적으로 설계한 셈이다. 2026년 최저임금으로 단순 환산하면 주 15시간은 월 약 67만원, 주 30시간은 약 135만원이다.
AI를 배우는 청년, 회계를 배우는 청년이 월세를 벌어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같은 조건에 있을 때, 이들이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 돈이 따라붙게 된다.
훈련기간 못 버티면 생활비 대출해라?
직업훈련 기간의 생계를 보완하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취업지원제도 Ⅰ유형은 요건을 충족한 참여자에게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한다. 다만 소득·재산, 과거 취업한 여부 등 요건이 있다. 소득·재산과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Ⅱ유형 청년에게는 같은 구직촉진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Ⅱ유형이 지원 격차를 충분히 메우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결산심사 결과 지난해 Ⅱ유형 청년층 참여자는 5만6천831명으로 목표인원 7만8천명의 72.9%였다. 국민취업지원제도 전체에서는 898억9천만원이 쓰이지 않았다.
Ⅱ유형 청년이 직업훈련을 받은 뒤 정부가 지정한 빈일자리 업종에 취업해 6개월을 근속하면 추가 지원하는 사업의 지난해 지원자는 270명에 그쳤다. 국회는 “소액의 지원금으로 청년이 수요하지 않는 빈 일자리에 청년을 밀어넣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훈련기간 생활비를 빌려주는 ‘직업훈련생계비대부’도 운영한다. 저금리 1% 대출제도다. 장기간 직업훈련에 따른 생계부담을 덜어 훈련에 전념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교육비를 지원해도 훈련받을 형편이 되지 않는 청년은 빚을 져야 하는 셈이다. 그마저 규모는 줄었다. 올해 직업훈련생계비대부 예산은 250억5천5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8% 감소했다. 지원 예정 인원도 6천500명에서 4천680명으로 줄었다.
취업성과도 제각각, 불투명
청년이 생활비를 마련해 몇 달간 훈련을 버텨도 취업성과로 충분히 이어질지도 숙제로 남는다. 기후노동위 결산심사 자료를 보면 내일배움카드 사업의 2025년 잠정 취업률은 55.9%였다. 국회는 2024회계연도 결산에서도 취업률 하락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첨단·디지털 인재 양성을 위해 집중 지원하는 KDT 취업성과도 도마에 올랐다. 국회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취업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훈련별 성과평가가 이듬해 과정 운영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직무별 훈련과정과 취업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훈련과정의 신설·유지·폐지 기준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했다.
정작 청년이 어느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지 판단할 정보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회는 훈련생이 훈련기관과 과정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관·과정별 취업성과와 훈련비, 훈련내용 등을 체계적으로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지역별 격차도 지적됐다. 내일배움카드 훈련기관 287곳 가운데 67.9%가 수도권에 있었고 서울에만 46.7%가 몰렸다. KDT 훈련기관은 75.4%가 수도권에 있었다. 인구감소지역의 KDT 기관은 5곳(1.5%), 참여자는 83명(0.2%)에 불과했다. 국회는 비수도권과 인구감소지역의 훈련 인프라를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노동부는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직업훈련 사업의 성과평가를 강화하는 등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자도생 직업훈련, 수요자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전문가들은 개별 사업의 지원액을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파편화된 직업훈련·취업지원 정책 자체를 수요자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 부처와 재원, 사업별 목적에 따라 유사한 청년 일자리·훈련정책이 각각 만들어지면서 청년 입장에서 필요한 교육의 질과 생계지원, 취업성과를 하나의 과정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인 교육훈련과 재취업정책을 파편화해서 볼 것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며 “동일·유사한 정책은 묶고, 실제 숙련을 형성할 수 있는 훈련기관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동시에 훈련기간 지원의 보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실질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지금은 제도들이 각각 만들어져 운영되다 보니 교육의 내용과 질에 대한 평가도 충분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청년이 실제 재취업에 필요한 역량과 숙련을 쌓을 수 있는지, 훈련 이후 노동시장으로 이어지는지를 중심으로 성과평가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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