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건설, 법 시행 뒤 다섯 차례 사망사고 … 중대재해 무죄 17건 중 11건은 하청노동자 사망
홍준표 기자 입력 2026.10.19 06:30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8개월이 지났다. 78년 만의 형사사법체계 대전환으로 중대재해 수사도 변곡점을 맞았다. 지난 2일 검찰청이 폐지되면서 고용노동부가 수사한 사건의 기소 여부는 이제 공소청이 가린다. 법원에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달 중대재해처벌법 첫 양형기준안을 내놓았다. <매일노동뉴스>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손솔 진보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235건의 공소장과 직접 입수한 1심 판결 167건을 분석했다. 공소장과 판결문 전수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중대재해 처벌의 현주소를 진단한다.<편집자>
지난 8일 오전 경기 파주의 KCC건설 도로건설 현장. 도로 다짐 작업 중이던 타이어롤러가 비탈면으로 굴러떨어지면서 이를 몰던 70대 하청노동자가 깔려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사고 원인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을 수사하고 있다. KCC건설은 이날 공시에서 노동자가 작업 준비를 위해 롤러를 몰고 이동하던 중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장비가 넘어졌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확히 일주일 전 KCC건설 경영책임자는 과거 사고에 대해 법원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이달 1일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단독(강신영 판사)은 2022년 9월 하청노동자의 감전사로 기소된 정몽열 KCC건설 회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하청업체 전기기술자는 강원도 원주의 KCC 문막공장 단열재 생산설비 공사현장에서 변압기실 고압차단기를 바꾸다 감전돼 목숨을 잃었다.
KCC건설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두 번 기소된 유일한 대형 건설사다. 당시 KCC건설 경영책임자는 2023년 3월 부산 동래구 ‘안락 스위첸’ 주상복합 신축 현장에서 하청노동자가 15층 덕트 개구부로 떨어져 숨진 사고로 지난해 6월 기소됐다. 그리고 같은달 최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원주 문막공장 사고로 정몽열 회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노동부에 따르면 KCC건설은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원주·부산 사고를 포함해 사망사고를 네 차례 일으켰다. 지난 8일 파주 사고를 포함하면 다섯 번으로 늘어난다. 원주·부산·파주 세 사고에서 숨진 사람은 모두 하청노동자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네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두 차례 기소됐지만 법원은 한 건에 대해 경영책임자의 죄를 묻지 않았다. 심지어 무죄 선고 직후 하청노동자가 또다시 일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 기업의 반복되는 사고에 수사당국과 사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하청노동자 숨졌는데 무죄 비율은 2배 넘어
18일 <매일노동뉴스>가 법 시행 뒤 지난 1일까지 1심이 선고된 판결문 167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최종 형 기준 원청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 무죄를 선고받은 17건 가운데 11건이 KCC건설 사건처럼 하청노동자가 숨진 사건이었다.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의 최종 무죄 비율은 16%로, 나머지 사건(6%)의 약 2.7배다.
1심 판결 167건 가운데 경영책임자뿐 아니라 피고인 전원이 무죄를 받은 사건은 5건으로 파악됐다.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튕겨나간 플라스틱 수공구에 이마를 맞아 하청노동자가 숨진 ‘평화오일씰공업’ 사건은 지난 6월 원청·하청 피고인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도로포장 현장에서 재하도급업체 포장공이 후진하던 타이어롤러에 깔려 사망한 ‘삼진씨앤씨’ 사건에선 원·하청과 롤러 운전원까지 피고인 9명이 모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주로 숨진 노동자나 동료의 행동을 원청 경영책임자가 예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17건 중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예견가능성 부정’이 6건으로 35%였다. 이 사건들은 하청노동자만 숨졌다. 특히 원청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을 분명히 인정하고도 무죄가 선고된 사건도 3건으로 확인됐다.
KCC건설 사고, ‘무단 작업이 원인’이라는 법원
‘KCC건설 원주 사고’도 법원은 원청이 사고를 예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정몽열 회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고 다음날 예정된 작업을 숨진 노동자가 알리지 않고 먼저 하다가 사고가 났다며 “(원청이) 지배하고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무단으로” 이뤄진 작업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통상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위험으로 난 사고라면 체계가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과관계를 쉽사리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사고 원인을 ‘재해자 과실’로 돌린 셈이다. 반면 하청 대표와 현장소장은 각각 징역형과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하청 대표가 사고 이틀 전 숨진 노동자에게 작업을 지시했고 현장소장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원청(KCC건설)이 사고 당일 피해자에게 작업을 지시했다고 봤다. 작업 일정이 적힌 회의록이 사고 뒤 조작됐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법원은 회의록 파일의 최종 수정일이 사고 전인 점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법원은 원청의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지우진 않았다. KCC건설이 사용한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공사비에 잡힌 금액의 약 55%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실제 “(원청이 점검·평가 절차를) 실질적인 방법으로 운영했는지 의심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업주 책임은 마지막, 재해자·동료 ‘잘못’
재해자에게 사고 책임을 돌리는 듯한 법원의 시각은 만연해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덤프트럭이 넘어지며 쏟아진 석탄에 하청노동자가 묻혀 숨진 ‘SK멀티유틸리티’ 사건에서 1심은 과실을 사고 원인으로 보고 행위마다 순서를 매겼다. 재판부는 제일 큰 과실은 운전기사의 ‘오조작’, 그다음이 출입금지를 어긴 피해자, 마지막이 노동자를 통제하지 못한 원·하청이라고 판단했다. 15년간 같은 유형의 사고가 없었다는 검찰 의견서를 들어 원청이 전도 사고까지 내다보기 어려웠다고 봤다. 민사책임으로 해결될 문제라고도 했다. 대법원은 올해 7월 원청 대표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례적인 사고’라는 판단 역시 주된 무죄 근거가 됐다. 국도 포장 현장에서 후진하던 타이어롤러에 70대 재하도급업체 소속 포장공이 깔려 숨진 ‘삼진씨앤씨’ 사건도 그렇다. 1심은 원청 경영책임자가 반기 1회 점검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사고”라며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평화오일씰공업’과 ‘삼화건설’ 사건의 경우 모두 법원은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청업체 대표까지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2022년 3월 호텔롯데 리조트의 시설관리를 담당하던 하청노동자가 시설 점검 중 전기적 불꽃에 감전돼 사망했다. 그런데 원청인 호텔롯데 대표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고, 하청업체인 ‘맥서브’ 대표와 관리자들만 기소됐다. 1심은 하청 대표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전기 자격이 없는 시설관리 노동자가 특고압반 내부까지 들어갈 것을 하청 대표가 예견할 수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에 대해 “사고 발생 여부가 극히 이례적이거나 위험성평가 과정에서 도출되지 않은 위험요인까지 사전에 포괄해 대비할 것을 요구하는 취지가 아니다”고 해석했다.
사고 실질을 본 판결도 “원청 관리 부실”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사고의 원청 책임을 두고 법원 해석은 갈린다. 재해자의 행동을 ‘예견하기 어려운 사고’로 판단하지 않은 판결도 존재한다. 옥수수 공장에서 관리원이 기계 투입구 관리 중 옥수수에 매몰돼 사망한 ‘사조씨피케이’ 사건의 1심은 대법원 판례를 들면서 피해자나 제3자의 과실이 끼어들어도 “통상 예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외형상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해 이행하는 듯한 모습을 갖췄더라도 ‘실질’이 “특유하고 빈발하며 예견가능한 사고 위험을 막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면 의무 불이행”이라고 봤다. 사고 과정에서 하청의 작업 지시나 노동자의 돌발행동이 있더라도 원청의 관리가 부실했다고 본 것이다.
조선소에서 안전난간이 부식돼 하청노동자가 떨어져 숨진 ‘삼강에스앤씨’ 사건도 그렇다. 원청 대표는 피해자가 작업중단 지시를 어기고 “무단으로 몰래 들어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원청이 하청의 안전관리비용 기준으로 업체를 평가했다면 방호장치 비용을 빼고 견적을 낸 업체에 공사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 이유로 원청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실형을 확정했다.
법 적용 유예·고의성 문턱에 ‘무죄’
50명 미만(건설공사 50억원 미만) 사업장에 2024년 1월26일까지 법 적용이 유예됐는데 검찰이 잘못 해석, 기소해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적용 유예처럼 ‘법 적용’에서 갈린 무죄는 17건 중 7건이다. 하청 용접공 2명이 폭발로 숨진 ‘대일개발’ 사건은 배관 공사금액이 500만원이라 적용 유예 대상이라며 2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죄가 선고돼 확정됐다. 하청노동자가 숨진 ‘한화오션’ 사건도 승강설비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은 1·2심 모두 무죄였다.
사업주의 의무 위반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판결도 4건이다. 지게차로 옮기던 강관에 하청노동자가 끼여 숨진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현대스틸산업 사건에서 1심은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고의가 필요하다”며 현대스틸산업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대표가 전담 신호수를 배치하라는 위험성평가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판단했지만, 법원은 그런 조치 없이 작업이 이뤄지는 걸 대표가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검찰은 항소했다. 보고 조치가 현장에서 이행되지 않은 것을 대표가 몰랐다는 사정이 ‘고의 없음’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2심에서 다퉈질 것으로 보인다. 하청노동자가 고소작업대에 탑승해 이동하던 중 구조물과 작업대 안전난간 사이에 머리가 끼여 숨진 ‘비앤더블유이앤씨’ 사건에서 1심은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따로 있다며 대표를 경영책임자로 보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 원청이 최종 책임”
하청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원청 경영책임자에게 무죄가 선고된 11건 가운데 8건은 아직 재판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5조)은 원청이 시설·장비·장소를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으면 하청노동자 안전까지 책임지도록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례적인 사고” “예견 가능성이 없음” “피해자 과실” 등을 이유로 원청의 관리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원·하청의 구조적 문제를 사법부가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원청에 하청노동자 안전까지 책임지게 하는 것은 위험한 작업이 하청으로 넘어가는 구조 때문”이라며 “노동자의 돌발 행동이 끼어들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원청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마련할 때 내다봐야 할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보면 도급 단계가 많을수록 원청의 인과관계가 끊기기 쉬워진다”고 우려했다. 한 대형로펌의 중대재해 전문 A변호사는 “하청이 원청에 알리지 않고 한 작업까지 원청 경영책임자가 막아야 한다고 요구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법원이 하청 평가 절차의 실질을 문제 삼은 만큼, 기업은 서류상 절차가 아니라 하청 작업이 실제로 관리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