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풍기 돌려 환기하고 ‘친환경탄’인데 방진마스크 … 노동부 납 취급 사업장 감독 명단 제외
홍준표 기자 입력 2026.10.22 06:30
“탕, 탕, 탕.” 총알이 발사될 때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탄피가 날리며 희뿌연 연기가 사로 주변을 덮었다. 권총을 쥔 손에는 화약 냄새가 배었다. 사격 강사는 내내 바로 곁에 붙어서 지도했다. 사격이 끝나고 방탄복을 벗자 땀이 흥건했다. 사격 흔적은 미리 준비한 소독용 에탄올로 닦고 나서야 조금씩 희미해졌다.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지난 16일과 19일 서울의 실내 실탄사격장 두 곳을 방문해 사격을 체험했다. 16일 방문한 한 사격장에서는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로 ‘실탄사격 체험’을 소개하고 있었다. 접수대 안내판에는 ‘만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횟수 제한 없이 도전할 수 있다는 내용의 사격 실력 평가 이벤트가 적혀 있다.
사격장 직원은 다양한 총기류를 소개하면서 탄은 ‘국산’이고 ‘친환경탄’이라고 소개했다. 대기실과 분리된 사로에 들어서자 천장에는 굵은 은색 덕트가 사대를 따라 이어졌고, 칸마다 주름관이 내려와 있었다. 사대 앞 천장에 매달린 번호판은 총알 자국투성이였다. 강사는 ‘3M’ 마크가 있는 방진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납가루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강사는 과거 민간사격장에서 일한 이력이 있다고 했다.
사흘 뒤인 19일 찾은 다른 실탄사격장에선 입구에 닿기 전부터 아릿한 탄약 냄새가 풍겼다. 단체 손님 10여명이 먼저 와 사격 중이었다. 직원은 일반 9밀리미터(㎜) 탄을 쓴다고 했다. 기자가 권총으로 25발을 쏘는 동안 탄피가 떨어질 때마다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사대 위 바구니에는 탄피가 수북이 쌓였다.
사대 바로 앞 천장에는 환기구가 설치돼 있었지만 덕트는 보이지 않았다. 사수 뒤편에 설치된 ‘선풍기’만 바람을 사로 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사로로 들어가는 문에는 ‘방진마스크 착용’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직원들은 방진마스크를 썼지만, 귀덮개와 보안경을 쓴 손님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청소하던 한 노동자는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있었다.
2024년 서울 민간사격장 강사 ‘납 중독’
정부가 ‘실탄사격장 납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내놓은 지 2년이 지났다. 하지만 2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실탄사격장은 사실상 고용노동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격장 납 노출 사례는) 지방관서를 통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면서도 2024년 대책 마련 이후 사격장의 납 중독 사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실탄사격장은 최근 노동부가 밝힌 ‘납 취급 사업장 감독’ 명단에도 빠져 있다. 류현철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국 150여개 납 취급 사업장을 철저히 감독하고 유사 사례 신고 체계도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부는 배터리 제조 관련 사업장 14곳으로 기획감독을 확대했다. 그러나 노동부 관계자는 본지에 “사격장은 (납 취급 사업장 감독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필요할 경우 별도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간 실탄사격장 ‘납 중독’ 실태는 약 2년 전 처음 드러났다. 2023년 11월 서울의 한 실내 실탄사격장에서 일을 시작한 강사가 12월 초부터 아랫배 통증을 호소하다 응급실을 찾았고, 납 중독 판정을 받았다. 혈중 납은 데시리터당 55마이크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직업병 유소견(D1) 기준(40㎍/㎗)을 넘었다. 환기장치 성능 저하에 따른 납 분진 확산과 바닥이나 작업복에서 다시 날린 납 분진, 적정 보호구 미착용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정부가 2024년 발간한 ‘건강한 사격장 운영을 위한 가이드’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사격장 직원 23명 직업병 유소견, 추적 관찰 ‘안갯속’
2023년 사격장 납 중독 사례가 발견되고 나서야 정부는 움직였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이듬해 1~5월 전국 실탄사격장 22곳을 조사했다. 이 중 13곳(59.1%)에서 공기 중 납이 노출기준인 세제곱미터당 0.05밀리그램(㎎/㎥)을 넘었다. 임시건강진단을 받은 노동자(87명) 중에서는 23명(26.4%)이 직업병 유소견자로 나왔다. 제주의 한 사격장은 직원 9명 중 무려 8명이 유소견 기준을 넘었다. 이곳은 그해 5월 문을 닫고 환기공사에 들어갔다.
노동부는 2024년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전국 실태 조사 결과와 ‘실내사격장 안전보건대책’을 국회에 보고했다. 대책에는 △친환경 실탄 생산·사용 유도 △사격장 환기설비 표준 마련과 기존 설비 적정성 검토 △사격장 관리규정에 직원 건강·환경관리 반영 △경찰 정기점검 때 공기질·직원 건강보호 조치 합동점검 △유소견자 23명을 혈중 납 30㎍/㎗ 이하가 될 때까지 추적관찰 등 5개가 담겼다.
노동부는 이 시기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을 점검해 시정 조치했다고 설명한다. 환기설비 표준도 ‘건강한 사격장 운영을 위한 가이드’에 포함됐다. 실탄사격장의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도 각 6개월과 1년 주기로 실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2024년 확인된 유소견자 23명에 대해 현재 추적 관찰 여부를 노동부 관계자는 확답하지 못했다.
사격장 현황과 납탄 사용도 ‘오리무중’
전국 실탄사격장은 2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24년 정부는 22곳만 조사했다. 사격장 허가를 담당하는 경찰이 올해 2월 밝힌 사격장 관리 강화 계획은 실탄 관리 중심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격장 납 문제는 노동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경찰청이 사격장을 허가할 때 환기설비를 허가 조건으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제주 사격장 노동자들을 치료한 이철갑 조선대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 연구팀은 올해 2월 발표한 논문에서 전국 사격장 노동자와 이용객수를 확인할 믿을 만한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격장에서 쓰는 탄의 ‘종류’도 납 노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철갑 교수 논문에 따르면 2024년 초 집단 납 중독이 발생한 제주 실탄사격장에서는 탄을 이른바 ‘친환경탄’으로 바꾸며 공기 중 납이 크게 감소했다. 제주 사격장은 환기공사로도 기준을 맞추지 못하다 뇌관에서 납을 뺀 탄으로 바꾸고서야 납 노출이 크게 줄었다.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도 납 관리 첫 단계로 ‘친환경탄 교체’를 권고했다.
그러나 친환경탄을 사용한 사격장 실태는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친환경 실탄 생산·사용 유도는 행정안전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맡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친환경탄 관리는 경찰청이 단독으로 담당하지 않는다”며 “관리 주체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격코치, 고농도 납 노출 확률 매우 높다”
정부 실태조사 후 2년이 지났지만, 현재 관리는 무방비 상태로 보인다. 고객의 사격을 지도·보조하는 강사들의 안전 상태가 2년간 방치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철갑 교수 연구팀은 사수(고객) 옆에 붙어 하루 종일 일하는 강사는 고농도의 납과 먼지를 들이마실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 제주 사격장 직원 9명도 모두 강사였다. 표적대 주변의 탄두를 치우는 과정에서도 납 노출은 생길 수 있다. 정부 가이드는 청소할 때 1급 이상 방진마스크와 보호복·보호장갑·보호덧신을 필수로 착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하고 감시할 방법은 없다. 서울 한 사격장의 청소 직원이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일하는 이유다.
사격 및 사격장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사격장안전법)은 사격장 공기 속 납 측정과 관련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장이 아닌 사격장의 납 노출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였다고 한다. 이철갑 교수는 “실탄사격장의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도 사각지대였는데 2024년 사례 발견 이후에 실시하게 됐다”며 “다른 사격장의 관리 실태는 알려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모든 실내 사격장에 탄을 바꾸게 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며 “특히 납탄을 법으로 못 쓰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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