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련소식

Home|최근소식|노동관련소식

 
작성일 : 25-06-30 09:57
[여수산단, 여수사람 ①] 용접기도, 자동차도, 전기도, 불도 꺼져 간다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1  
NCC 여수공장 평균 가동률 78.5%의 그늘 … 산단 불황 연쇄 작용, 지역경제 침체 늪으로

원유와 각종 화학물질을 옮기는 파이프가 얼기설기 얽힌 여수국가산업단지는 겉보기에 견고했다. 그러나 이따금 속살을 보인 공장들 내부엔 오가는 사람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느슨한 철조망 사이 가까스로 열린 건설현장에 소규모 인부가 무언가를 나르거나 듬성듬성 박았다. 산단 풍경은 마치 속이 빈 파이프처럼 공허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석유화학산업 위기를 살피러 11~13일 방문한 여수산단의 모습이다.

공장소음 잦아들고 플랜트건설 줄어드니
출퇴근자 없어서 쾌적한 산단로의 ‘역설’

“원래 양쪽에 차들이 즐비해요. 지난번 방송사 시사프로그램도 그 모습을 찍어 갔어요. 근데 지금은 텅 비었잖아요.”

이광민 건설노조 전남건설지부장의 말이다. 이 지부장은 카니발 차량으로 산단을 누볐다. 별로 막힐 것은 없었는데, 그의 말처럼 산단에 차가 별로 없었다. 점심을 조금 지난 시간 탓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플랜트건설 현장이 없어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의 출퇴근 차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지부장은 “원래 아침에 출근할 때는 전쟁”이라며 “여수에 산단까지 오는 대중교통이 없어서 출근할 때 다들 자차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지부장은 산단 곳곳에서 가동을 멈춘 공장을 소개했다. 곳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80% 정도로 가동을 줄였다”고 했다. 전남도와 여수시가 고용노동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신청하면서 만든 자료에는 “NCC 여수공장 평균 가동률 78.5%로 2021년 대비 8.5% 하락”이라고 나와 있다. 가동을 줄였다는 것은 기존 설비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연쇄적으로 플랜트설비를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플랜트건설 발주가 줄었단 의미다. 그 결과가 텅 빈 산단로다.

단순히 출근자용 차량만 줄어든 게 아니다. 대형트럭도 시동을 껐다. 가동을 줄인 탓에 생산량이 줄어드니 옮길 물건이 없어서다. 여전히 소수의 대형트럭은 위협적으로 달렸지만 차나 사람이 없어 도로는 넓었다. 인근의 화물터미널은 텅 비어 있어야 정상인데 아침마다 주차할 곳이 없다고 한다. 운행횟수가 줄어든 탓이다. 조용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전남지역본부 여수지부장은 “운송사가 중개하는 물량이 줄어 기다림의 연속”이라며 “운행횟수가 체감상 40%가량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화물노동자는 차량을 정리하고 운전대를 놓고 있다고 한다. 이 지회장도 “국가산단이고 석유화학산업이라 사양산업일 수 있다는 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어도 와닿지 않았다”며 “적어도 내가 운전대를 놓을 때까진 괜찮을 거라고 봤는데 아니었다”고 말했다.

불황은 갈등을 잉태했다. 산단의 한쪽에 넓은 부지를 차지한 롯데첨단소재㈜는 하청 노사 갈등에 휩싸였다. 11일 오후 화섬식품노조 조합원들이 선전전을 했다. 플라스틱 펠릿을 만드는 롯데첨단소재는 최근 공정 일부를 인근 율촌산단으로 통폐합하는 결정을 했다. 새 하청업체에 공정을 맡기기로 하면서 해당 공정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겐 날벼락이다. 그래서 이달 들어 공정 이전에 반대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가동률 80%라는 숫자를 뒤집은 미가동률 20%의 현주소다. 무더위 속 공장 정문 앞에서 플래카드를 펴고 외치는 노동자 목소리는 아스라이 들려오는 공장의 소음과 불협했다. 산단의 위기에 사내하청 노사부터 불화했다.

산단 곳곳 어딘가로부터 뻗어 나온 각종 파이프는 다양한 이름의 화학물질을 품고 산단을 내질렀다. 어떤 것은 항만을 향했고 어떤 것은 각각의 저장탱크를 향했다. 유명한 사탕 브랜드처럼 솟은 산단 내 저장탱크에는 기억하기 어려운 다음절어로 구성된 화학물질 이름이 쓰여있다. 어떤 파이프는 GS칼텍스의 것이었고 어떤 파이프는 LG화학, 남해화학 등의 것이다. 용도를 모르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런 파이프의 관문 몇 개를 지나치면 한국바스프㈜와 금호석유화학㈜ 인근의 작은 둔덕이 있다. 그나마 여수산단의 전경을 산단 안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나가는 차량도 많지 않은 산단. 불황의 무게가 파이프 위로 퇴적층처럼 가라앉았다.

’산단바라기’ 무선지구에 켜켜이 쌓인 불황
산단→플랜트건설→음식점→식자재업 ‘번지는 위기’

산단 인근의 무선지구는 산단 형성 뒤 모인 플랜트건설 노동자와 화물노동자를 위한 상업지구다. 2012년 해양박람회 유치 이후 관광인프라를 강화한 여수시의 구·신도심과는 거리가 있어 말 그대로 산단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다. 12일 방문한 무선지구는 그러나 휑했다.

“이런 불황이 없어요.” 무선지구에서 12년째 돼지국밥을 팔고 있는 서미숙(45)씨는 견디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오가 조금 안 된 시각, 테이블은 모두 비었고 단체손님을 받기 위해 조성한 대형룸은 에어컨도 꺼뒀다. 전기세라도 아끼려는 이유다. “에어컨을 켜 놓을 수가 없어요. 테이블 서너 곳이라도 차면 그때야 켜요. 공단 교대근무자를 대상으로 아침장사도 하는데 손님이 없을 때는 미처 네 그릇을 팔지 못해요.” 예전엔 자리가 없어서 장사를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식당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계가 정오를 넘겼지만 손님은 들지 않았다. 여름 국밥집 장사라 그렇다기엔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식당뿐 아니다. 이광민 지부장은 “무선지구는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이 공사가 있을 때 몰려와 단체로 혹은 장기로 숙박하는 숙박촌이자 식사를 해결하는 먹거리촌”이라며 “산단 불황으로 플랜트건설 노동자가 오질 않으니 임대주택 곳곳이 공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그랬다. 식당 앞 삼거리를 꺾어 들어가면 원룸촌이 형성돼 있는데 세입자를 구하는 광고지가 나붙었다. 북적해야 할 유흥가는 밤이 돼도 흥이 나지 않았다. 맥줏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랜차이즈 술집만 겨우 몇 테이블을 채웠다. 한산하다 못해 서늘한 밤거리다.

“평균 매출을 따져 보면 통상 하루에 120만~150만원을 벌었는데 지금은 70만원을 넘기기 어려워요. 거의 반 토막 났죠.” 매출이 두 동강 나면서 서미숙씨는 인력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원래 4명이 일했지만 이젠 3명이다. 그렇게 산단 불황은 1명의 고용을 분명하게 없앴다.

그렇다고 버틸 체력이 준비되는 것도 아니다. 서씨는 “은행권 대출도 막혔고 뭐라도 지원을 받아 보려는데 소상공인이 다 힘드니까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음식점의 매출부진은 이번엔 식자재업계로 넘어간다. 서씨는 “음식용 야채를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 달에 400만원 가까이 발주했는데 이제 절반인 200만원 정도만 발주한다”며 “국밥집이라 요릿거리로 파는 수육을 과거에는 거의 매일 삶았는데 이젠 아예 삶지 않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산단에서 플랜트건설로, 플랜트건설에서 음식점으로, 그리고 식자재업계로 위기는 계속 번졌다.

정부는 지난달 1일 여수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2년간 지방교부세 622억원을 추가로 지원받는다. 지방교부세 외 예산지원은 적어도 올해는 기대하기 어렵다. 전남도는 3천707억원 규모의 위기대응 지원사업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지만 현재 추가경정(추경)예산에 반영된 건 37억원에 불과하다.

고용위기지역 지정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정량요건을 채우지 못한 탓이다. 정성요건을 심사해 지정이 가능한데,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심의위원회 회의를 주재할 장관이 공석이라 검토가 지연됐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오늘의 방문자 1 | 총 방문자 38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