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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6-30 10:10
[여수산단, 여수사람 ③] 수출 막히고 생산과잉, ‘전환대책’ 누가 만드나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35  
에틸렌 주요 소비국 중국, 자급률 높이며 국내 타격 … 범용제품 집중한 한국 석유화학, 시장에 해법 못 맡겨

“중국이 석유화학산업 수요시장에서 공급시장으로 바뀐 것, 우리나라 플랜트건설 노동자들이 가서 다 공장 지어준 탓이다.”

위기를 겪는 여수국가산업단지 플랜트건설 노동자 한 명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우수한 국내 플랜트건설 인력이 석유화학산업의 핵심 시설인 나프타 납사분해설비(NCC)를 중국에 짓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완전히 틀리지도 완전히 들어맞지도 않는 표현이다. 어느 쪽이든 기록적인 여수산단 불황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중국이다.

에틸렌 생산 세계 1위 중국, 팔 곳 없는 한국

노동자의 말이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이유는 중국은 원래도 석유화학산업에서 대량생산국이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의 쌀로 부르는 에틸렌을 살펴보자. 에틸렌은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나프타를 NCC를 활용해 분해하면 얻을 수 있는 기초유분 중 하나로 플라스틱의 원료다. 중국은 2023년 전 세계 에틸렌 생산능력의 23%를 차지해 그해 5천180만톤을 생산했다. 4천580만톤(20.3%)을 생산한 미국을 따돌렸고 1천780만톤(7.9%)을 생산한 사우디도 앞섰다. 우리나라는 1천280만톤(5.7%)으로 세계 4위의 에틸렌 생산국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1천295만톤이다.

그렇다면 세계 1위의 에틸렌 생산국인 중국은 어째서 수요시장이었을까. 그만큼 막대한 소비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에틸렌을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 에틸렌 소비 비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12%에서 2022년 23%까지 증가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에틸렌 5분의 1을 빨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적 투자를 시작해 에틸렌을 비롯한 석유화학 자급률을 올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 결과 2020년부터 에틸렌 자급률은 100%를 상회했다. 중국 자국 생산만으로 에틸렌 수요를 모두 충족할 뿐 아니라 초과생산이 이뤄져 해외에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2022년 이후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급속히 나빠져 수출길이 더 어려워졌다. 그 결과가 세계적인 석유화학산업의 과잉, 그리고 여수산단의 위기다.

가뜩이나 NCC 몰린 한국, 정유사까지 뛰어들어 포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수출시장이 막혔으니 내수로 돌리면 될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이미 과잉생산의 늪에 빠져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에틸렌 생산설비를 살펴보면 여수산단이 626만5천톤을 생산할 수 있다. 대산산단이 477만5천톤, 울산산단이 176만톤이다. 광양과 구미·군산 등 산단 밖 설비도 일부 존재해 약 15만5천톤의 설비를 갖췄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제한되는 이른바 투자 자유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석유화학 설비가 늘었다. 에틸렌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석유화학 사업체는 1988년대 2곳에서 2023년 기준 9곳까지 늘었다. 기초유분같이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업체는 더 늘었다.

결정적인 시기는 2021년과 2022년이다. 공교롭게도 불황의 초입인 시기와 겹친다. 이 당시의 결정적 변화는 국내 정유업체의 석유화학산업 진출이다. GS칼텍스는 연간 에틸렌 75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여수산단에 구축했다. 2018년께 첫 삽을 떠 2023년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2조7천억원이나 쏟아부었다. 현재 여수산단에 존재하는 NCC 설비만 3개 법인 7곳에 달한다. HD현대오일뱅크도 3조원을 들여 롯데케미칼과 함께 서산(대산산단)에 에틸렌 8만5천톤을 연간 생산하는 설비를 갖춰 2022년부터 가동했다. 여기에 사우디 아람코 자본을 등에 업고 진행 중인 울산의 샤힌프로젝트도 에틸렌 생산시설이다. 과잉생산이 거듭되니 수익성 개선은커녕 구조조정을 목전에 두게 됐다.

업스트림 무너지자 산업 전체 흔들

이쯤에서 석유화학산업의 현황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틸렌이 석유화학의 쌀이라지만 에틸렌과 함께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생산품은 다양하다. 에틸렌을 포함한 프로텔린·부타디엔·벤젠 등을 기초유분이라고 한다. 석유화학산업의 기본 원료로, 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합성섬유 같은 제품의 원료다. 석유화학산업에서는 NCC를 활용해 이런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공정을 ‘업스트림’으로 구분한다. NCC를 보유한 대규모 석유화학기업은 이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공정만 담당한다. 이후 이 물질들을 사들여 VCM이나 P-X, SM 등을 생산하고 합성해 폴리에틸린·폴리프로필린 같은 합성수지나 합성고무 등을 생산해 가공산업에 다시 원료로 제공하는 공정을 ‘다운스트림’으로 다시 구분한다. 최종적으로 다시 폴리에틸린 등을 구매해 실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공정도 다운스트림에 속한다. 이처럼 산업 자체가 NCC를 이용한 생산을 토대로 수직계열화 돼 있다. 다시 말하면 NCC가 가동을 줄이거나 멈추면 그 아래 다운스트림을 형성하는 다양한 기업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 여수산단이 그런 상황이다. 과잉생산의 늪에 빠져 여천NCC 같은 기업은 이미 3년째 적자다. 오랫동안 롯데그룹의 효자노릇을 했던 롯데케미칼은 회사채를 찍기 위해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야 했다. 이들이 어려움에 처하자 NCC에 기대어 있는 다른 기업들이 대부분 휘청이고 있다.

‘스페셜티’ 모색, 노동자 안 보여
시민·노동자 참여 ‘거버넌스’ 절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남도와 여수시는 여수석유화학산업위기대응협의체를 꾸려 산업통상자원부에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요청했고, 잇따라 여수고용위기지역지정협의체를 구성해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고용노동부에 신청했다. 두 협의체는 그러나 산자부가 여수시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하고, 노동부가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위한 실사를 한 뒤 사실상 활동을 멈췄다.

전남도와 여수시는 장기적으로 여수시 석유화학단지 주력 생산물을 에틸렌 같은 범용제품 생산에서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남도 의뢰로 지난해 전남테크노파크가 내놓은 연구용역 결과가 바탕이다.

이런 방향성은 정부도 유사하다. 산자부는 지난해 4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협의체를 출범해 6월 여수산단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고부가가치 제품, 이른바 스페셜티 전략 도입에 공감대를 이뤘다.

다만 기업의 자율적 전환에만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 류승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의 위기마다 석유화학산업 불황도 찾아왔지만 과잉투자 조정 문제는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고 외환위기 상황에도 빅딜이나 설비 스크랩(철수)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져 범용제품 위주와 높은 대외 의존도라는 산업 체질을 바꾸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석유화학산업 불황 대응과 중장기적 변화의 방향을 시장과 대기업에 맡겨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노동자와 시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강조했다. 사실 앞서 전남도와 여수시가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과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위해 각각 꾸린 두 협의체에도 당초 노조는 참여하지 못했다. 건설노조 전남건설지부·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여수지부가 참여한 여수산단 산별노조 공동대책위원회(집행위원장 이광민 전남건설지부장)가 출범해 참여를 요청한 뒤에야 문턱을 없앴다. 이광민 집행위원장은 “여수산단의 위기가 가중한 상황에서 막대한 일자리 피해를 노동자가 이미 경험하고 있고 지역경제의 어려움도 확산했다”며 “노동자가 참여해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석유화학산업과 여수산단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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