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련소식

Home|최근소식|노동관련소식

 
작성일 : 26-09-07 10:50
[‘동네병원’ 사정 어떻기에] 경력은 37년, 월급은 253만원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34  
오래 일해도 임금 제자리, 이직하면 경력 ‘리셋’

우다영 기자 입력 2026.09.07 06:30

동네 병·의원에서는 오래 일해도 경력의 가치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인천지역 의원급 의료기관 노동자들은 평균 12년 넘는 경력을 쌓고도 월 253만6천원을 받는 데 그쳤다.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한다고 임금이 오르는 일도 없었다. 여기에 주 6일·주말근무와 연차 미보장까지 겹치면서, 숙련은 쌓이지만 노동조건은 제자리인 의원급 의료기관 노동자의 현실이 드러났다.

37년 경력의 물리치료사 ㄱ씨는 오래전 급여명세서를 우연히 다시 펼쳐보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서 15년, 의원급 개인병원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봉 협상은 ㄱ씨에게 남의 일이다. 임금을 올리려면 혼자 원장을 찾아가 부탁해야 했다. 월 2만~3만원 겨우 올렸다. 그마저도 2년에 한 번 정도였다. 어느 날은 경력이 자신보다 10년가량 짧은 직원과 월급 차이가 10만원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ㄱ씨는 “제가 쌓아온 37년의 경력과 손끝의 숙련은 계산에서 지워졌다”며 울먹였다.

연차도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ㄱ씨가 일한 곳은 5명 이상 사업장이었지만 원장과 얼굴을 붉히기 싫어 연차를 쓰겠다는 말조차 쉽게 꺼내지 못했다. 평일에 급한 일이 생기면 직접 대체근무할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비용까지 부담했다. 관행이 바뀌었으나,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서가 아니었다. 저임금·저복지로 구인난이 심해지자 새로 입사하는 직원이 자유로운 연차 사용을 조건으로 내걸면서부터였다.

8년차 간호조무사 ㄴ씨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ㄴ씨는 최근 6년간 일한 병원을 그만뒀다. 병원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근무일수를 절반으로 줄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뒤 월급도 절반으로 줄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에는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결국 체력적인 한계로 직장을 옮겼다.

10명이 넘게 일하던 이 의원에서도 ㄴ씨는 입사 뒤 4년간 연차휴가를 하루도 쓰지 못했다. 입사 당시 연차가 왜 없느냐고 묻자 “여기는 없다. 아쉬우면 있는 데로 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차가 생긴 것은 입사 4년 뒤였다. ㄴ씨는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가 원장님의 은혜로운 마음이 있어야 생기는 곳”이라고 말했다.

저임금 만연, 대체근무자 구해야 연차 사용

보건의료노조와 노종면·박선원·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토론회에서 공개한 실태조사 결과는 ㄱ씨나 ㄴ씨 처우가 다른 동네 병·의원 노동자들의 평균값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천지역 의원급 의료기관 노동자 실태조사’가 그것이다. 실태조사에 응답한 병·의원 노동자는 모두 443명이다. 간호조무사가 81%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응답자가 일하는 의료기관 10곳 중 8곳은 노동자가 10명 이하인 소규모 사업장이었다. 이들은 의료현장에서 평균 12.4년을 일했고 현재 의료기관에서도 평균 6.3년을 근무했다. 적지 않은 경력을 쌓은 숙련 노동자들이지만 임금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응답자의 월평균 임금은 253만6천원이었다. 간호조무사는 평균 244만원을 받았다. 경력이 쌓인다고 임금도 함께 오르는 구조는 아니었다. 전체 직종 경력이 길수록 임금은 어느 정도 높아졌지만, 현재 의료기관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는 임금과 뚜렷한 관계가 없었다. 한 병원에서 장기간 일해도 그만큼 임금이 올라간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문종인 민주일반노조 인천본부 정책위원(사회학 박사)은 “경력과 근속이 임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직장을 옮기면 문제는 더 뚜렷했다. 이전 직장에서 쌓은 경력이 새 직장의 임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가령 한 의료기관에서 6년 동안 일하며 임금이 올랐더라도 다른 곳으로 이직하면 6년의 경력을 인정받아 그 임금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낮은 수준의 임금부터 시작하는 식이다. 문종인 정책위원은 “직장을 옮길 때 리셋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경력직으로 인정받아 그 위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다시 처음으로 내려가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42% 주 6일, 열에 아홉은 주말 근무 경험

낮은 임금에 긴 노동시간까지 겹쳤다. 주 6일 근무한다는 응답이 42.1%로 주 5일 근무(43.8%)와 거의 비슷했다. 토·일요일에 일한 경험이 있다는 노동자는 92.3%에 달했다. 주말에 일하고도 별도 수당이나 대체휴무를 어느 것도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58.7%였다. 노동자 1~4명이 일하는 가장 작은 사업장에서는 그 비율이 77.5%까지 올라갔다. 사업장이 작을수록 주말에 일한 대가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연차휴가도 비슷했다. 응답자 10명 중 4명 가까이(37%)는 연차휴가가 없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연차휴가 일수는 평균 7.8일이었다. 특히 노동자 1~4명 사업장은 평균 5.2일로, 5~10명 사업장 10.9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규모가 작은 의원에서 일할수록 쉴 수 있는 날도 짧았다.

처우는 낮지만 일에 대한 평가는 노동자 스스로 높았다. 응답자의 74.4%는 자신의 업무에 전문기술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68.3%는 자신이 하는 일의 사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응답도 58.4%였다. 문 위원은 “높은 전문직 특성을 갖고 있고 자신들의 일이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일에는 가치를 느끼지만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 계속 일하고 싶지는 않다고 응답했다. 현재 노동조건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대답은 25.8%에 그쳤고, 지인에게 자신의 직업을 추천하겠다는 응답은 18.8%에 불과했다. 반면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81.4%였다. 필요한 개선사항으로는 임금인상(84.4%)이 가장 많이 꼽혔고 자유로운 연차 사용(50.3%), 경력 인정(45.4%)이 뒤를 이었다.

문 위원은 조사 결과를 두고 “전체적으로 저임금 상태고 근로조건도 좋지 않았다”며 “연차도 안 되고 주 6일 근무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물리치료사 ㄱ씨는 “37년을 일한 사람의 세월값을 말해주지 못하는 급여명세서는 저 한 사람만이 겪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작은 병원에서 저와 같은 노동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오늘의 방문자 1 | 총 방문자 382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