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 발표] 위험업무 도급 금지·원청 책임 강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내년 시행특수고용직 안전 확보·감정노동자 보호 추진 … 노사정 참여 안전대책단 만들어 후속조치 논의
정부가 유해·위험성이 높은 작업에 하도급을 금지하고 하청업체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추진한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걸쳐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관련법을 개정해 내년 하반기에 시행하는 것이 목표다. 음식배달원을 비롯한 특수고용직 안전대책을 강화하고 감정노동자 정신건강 보호법안도 만든다.·
정부는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이러한 방안을 담은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확정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회의 직후 기자브리핑을 갖고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국정운영 가치를 적극 실천하겠다”며 “산업재해를 선진국 수준으로 감소시켜 ‘산업재해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일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연간 산재사망자 1천명·경제적 손실 21조원=우리나라 산재사고 사망자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국제수준과 비교하면 많은 편이다. 2008년 1천172명이던 산재사망자는 2013년 1천90명에서 2015년 955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969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산재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지난해에만 21조원으로 추산된다.
전체 산재사망자 중 하청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39.9%에서 2015년 42.3%, 지난해 42.5%로 증가했다. 유해·위험업무 하도급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특히 50억원 이상 건설공사 현장에서 최근 3년간 산재사고로 숨진 노동자 100명 중 98명(98.1%)이 하청노동자였다. 300인 이상 조선업에서도 사망자 100명 중 88명(88%)이 하청노동자일 정도로 비중이 크다.
국제수준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 산재사망자는 많은 편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0.58명으로 비교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개 회원국 중 멕시코(0.79명) 다음으로 높았다. 미국(0.36명)·일본(0.19명)·독일(0.16명)과 두세 배 격차를 보인다.
2015년 7월 한화케미칼 폭발사고(6명 사망)나 올해 5월 삼성중공업 크레인 전도사고(6명 사망) 같은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사망사고 발생시 최소 징역 1년, 하한형 설정=정부는 산재사고와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유해·위험업무에 하도급을 제한하고 원청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수은·납·카드뮴 같은 유해·위험성이 높은 물질을 다루는 14종의 작업은 하도급이 전면 금지된다. 불산·황산·질산·염산 같은 물질을 다루는 작업은 안전·보건조치가 확실히 취해진 경우에만 도급을 승인한다.
유해·위험성이 낮은 작업이라도 원청은 안전관리 역량을 갖춘 적격 하청업체를 선정할 의무를 진다. 이를 어기거나 안전관리 미흡으로 하청업체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청은 하청과 똑같이 최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보다 처벌규정을 강화했다.
정부는 특히 사망사고와 관련해 실질적인 처벌이 강화되도록 징역 1년 이상 하한형을 도입한다. 법인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1억원 이하에서 10억원 이하로 확대해 가중 처벌한다. 건설업 역시 사업주(하청업체 대표)보다는 발주자와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한다. 발주자와 원청은 설계·시공 과정에서부터 구조물 안전과 적정 공사비·공사기간 보장 같은 안전사항을 고려해 하청을 맡겨야 한다.
원청이 하청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묵인하거나 지시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적정공사비 확보를 저해해 하청노동자 안전관리가 소홀해지는 일이 건설현장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9월 정기국회 통과 유력=정부는 이와 함께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에게 안전보건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한다. 이를 위해 프랜차이즈업체에 안전보건관리 가이드라인을 보급한다.
음식배달원·퀵서비스 기사를 비롯한 특수고용직들이 산업안전보건법 보호를 받고,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와 상시 1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산재보험 혜택을 받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한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안은 9월 정기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김왕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감정노동자 직무스트레스나 정신건강 치료방안을 담은 네 개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라며 “여야가 모두 법안을 발의해 이견이 없는 상태고 정부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서 올해 안에 입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원인뿐만 아니라 제도·관행상 문제까지 규명하는 국민참여 조사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김영주 장관은 “(원청 책임 강화 등 법령 개정이 필요한) 주요 대책은 노사정이 참여하는 안전제도혁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세부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상자] 시민사회·노사단체 “정부 중대재해 대책, 진일보한 내용 담아”
노동계는 “노조 참여” 요구, 재계는 “과잉처벌 우려” 제기
정부가 17일 발표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에 대해 시민사회와 노사단체는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자 안전 확보를 위해 그동안 요구했던 내용이 상당수 반영됐기 때문이다. 다만 노사단체는 각자 이해에 따라 특정 사안에서 입장이 엇갈렸다.
노동안전보건연구소·안전사회시민연대를 비롯한 21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 대책은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원청 책임 강화 같이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제정연대는 “위험의 외주화 제한 조치는 생명·안전업무에 대한 도급 금지로 확대하고 원청에 하청노조와의 교섭의무를 부과해 일상적인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국회가 적극적인 입법으로 노동자·국민 요구에 화답해 달라”고 촉구했다. 실제 정부 대책 상당수가 법 개정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최명선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재예방 주요 주체인 노동자와 노조 참여 확대대책이 없다는 것은 한계”라며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을 포함해 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노총도 “산재예방을 위한 긍정적 대책이 포함됐다”면서도 “최근 이슈가 된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대책이 빠진 것은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기홍 산업안전보건실장은 “대형공사를 발주하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것도 한계”라고 지적했다.
건설노조는 “지난해 건설현장에서 2만6천570명이 재해를 당했고 이 중 554명이 사망했다”며 “노동부·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추진하는 산재예방 방안이 건설노동자 안전확보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총은 “새 정부가 근로자 생명과 안전 확보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중대재해 예방 정책을 마련한 것은 바람직한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경총은 다만 “유해작업 도급 금지는 기업 간 계약체결 자유를 침해하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배에 해당한다”며 “사망재해 처벌 수준이 낮지 않은 상황에서 1년 이상 징역이라는 하한형을 설정하는 것은 과잉입법 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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