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법도 없는데] 파업시 군·경찰 대체인력 투입 문제 없을까
법원 “재난안전법·철도산업법, 근거 안 돼” … 군·경찰 노조법상 대체인력 여부 쟁점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철도노조 1차 경고성 파업에 정부가 군과 경찰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것에 대해 위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19년 법원은 정부가 대체인력 투입의 근거로 삼았던 법령은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어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법원 “노조 파업, 재난·비상사태 아냐”
수서행 KTX 투입을 촉구하며 돌입한 철도노조의 파업이 18일 오전 마무리됐다. 정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비상수송대책반을 각각 가동하며 노조 파업에 대응했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첫 날인 14일부터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열차 운행률을 유지했다.
코레일이 밝힌 대체인력 투입 규모는 4천962명이다. 군, 경찰, 특별사법경찰관 등을 합한 숫자다. 정부는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2013년, 2016년, 2019년 매번 500여명의 군 인력을 투입해 왔다.
국토부는 지난달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체기관사 투입이 불법이라는 노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과거 철도노조가 대체기관사 투입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정부가 가리킨 해당 판결(2017가단5169927)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았다. 도리어 정부가 군 인력 투입의 근거로 든 여러 법령이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당시 피고인 정부는 재난안전법 15조의2와 철도산업법 36조를 바탕으로 군 인력 투입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9년 서울중앙지법은 “노조의 파업이 재난안전법과 철도산업법에 규정된 재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해당 조항은 군 인력 지원결정의 법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며
“쟁의행위를 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에 해당한다고 보거나 철도산업법에 규정된 비상사태로 볼 경우 쟁의행위 기간 중 사용자의 채용 등을 제한하는 노조법의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필수유지업무 규정이 지켜진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이 사회재난이나 비상사태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이처럼 정부가 투입한 군 인력의 위법성은 인정했지만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아 원고인 철도노조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손해배상은 위법성과 고의 과실이라는 요건이 필요한데, 해당 판결은 군 인력을 투입한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 중 고의 과실 부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위법성에 대한 부분은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대체인력 투입 주체?
그렇다면 필수공익사업 사용자의 대체인력 투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3조 3항과 4항은 군이나 경찰 투입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해당 조항에는 ‘사용자’가 쟁의행위 기간 중 파업참가자의 절반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체인력을 채용하거나 도급 혹은 하도급 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철도노조 조합원의 법적 사용자가 아니다. 또한 해당 조항은 대체인력 투입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군과 경찰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할 수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다. 정부가 군과 경찰 같은 공조직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근거 법령이 필요하다. 군이나 경찰을 철도 대체인력으로 볼 수 있다는 근거 법령은 현재로서는 없다.
따라서 △정부가 대체인력 투입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와 △군과 경찰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쟁점은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우지연 변호사는 “2019년 서울중앙지법 판결로 정부의 군 인력 투입은 철도산업법과 재난안전법이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부분이 밝혀졌다”며 “정부가 해당 판결을 알고도 대체인력을 투입한 점을 고려해 고의 과실 부분을 추가로 다퉈볼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ILO “대체인력 사용, 결사의 자유 심각하게 침해”
지난해 4월부터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87호 협약(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 노동계는 대체인력 투입을 규정한 노조법 43조가 87호 협약과 결사의 자유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철도의 경우 ILO가 규정한 ‘엄격한 의미의 필수서비스’가 아니다.
철도나 항공·도시철도·가스·석유·은행 부문은 파업권이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유지해야 할 최소서비스에 해당하지만 ILO가 규정하는 엄격한 의미의 필수서비스는 아니다. 철도와 같은 분야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해 파업의 효력을 낮추는 것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될 소지가 있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판정례집 6판(2018)에서 “엄격한 의미에서 필수서비스라고 간주할 수 없는 부문에서의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의 심각한 침해에 해당한다”며 “파업이 합법적인 경우 무기한으로 파업자들을 대체하기 위해 기업 외부에서 끌어온 노동력을 이용하는데 의지하는 것은 파업권을 훼손할 위험을 수반하며 이는 노조권의 자유로운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