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재해 산재인정' 공은 정부와 국회로
헌재, 헌법불합치 다수의견에도 1표 부족해 합헌 결정
"노동자의 출퇴근재해 보호를 위해 국회와 정부가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요구다."(한국노총)
"다수의 재판관들이 위헌성을 지적하고 출퇴근재해의 보상범위를 확대하는 입법개선을 촉구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민주노총)
헌법재판소는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이 양아무개씨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1항다목에 대해 재판관 9명 중 5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지만 1표가 부족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6일 밝혔다.
출퇴근재해 산재인정 문제는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바 있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8대 5로 출퇴근재해를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에 헌법재판소도 같은 결론을 내렸지만, 재판관 9명 중 5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내고 입법을 통한 개선을 촉구한 만큼 정부와 국회가 이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정부와 국회가 시대의 요구에 답할 때"라며 출퇴근재해 산재인정에 대한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고용노동부는 연말까지 출퇴근재해 산재보험 재정추계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후속논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헌재 결정이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헌법재판관 다수 “평등원칙 위배”
위헌법률심판에 오른 산재보험법 제37조1항다목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위헌심판심판의 쟁점은 사용자로부터 출퇴근 차량을 제공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산재인정 기준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되느냐 여부다.
합헌 의견을 낸 김창종·안창호·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산재보험법은 원칙적으로 보험원리를 도입해 노동자의 업무상재해에 관한 사업주의 무과실손해배상책임을 보전하기 위한 제도"라며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미치지 않는 통상의 출퇴근 행위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사의 차량제공 혜택을 받는 노동자와 달리 비혜택 노동자가 산재보험법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개별 사업장의 근로조건 및 복지수준 등의 차이에서 오는 불가피한 결과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박한철·이정미·김이수·이진성·강일원 재판관은 "해당 법조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비혜택 노동자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줘 자의적으로 차별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또 "공무원과 일반노동자의 출퇴근 행위는 사실적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며 "그런데도 공무원과는 달리 통상의 출퇴근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다만 "해당 법조항을 단순위헌으로 선고할 경우 최소한 출퇴근재해의 법적 근거마저 상실되는 공백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법을 개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출퇴근재해 노사정 대화 시작할 때"
노동계와 정부는 출퇴근재해 산재 인정과 관련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노동부가 올해 '출퇴근 재해 실태 및 재정소요 추계' 연구용역에 들어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방하남 장관은 지난달 26일 열린 고려대 노동대학원 특강에서 출퇴근 재해 산재인정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방 장관은 "재정추계 결과가 나오면 관련 위원회에서 사회적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영계다.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출퇴근재해 산재보상 추진을 ‘경제민주화 과잉입법’ 중 하나로 꼽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산재보험기금 재정흑자로 2011년에 이어 올해도 산재보험료율을 인하한 만큼 재정부담을 주장하는 재계가 설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편 노동부는 2006년에도 출퇴근재해 재정추계를 검토했다. 이에 따르면 출퇴근재해가 산재로 인정될 경우 필요한 예산은 1조2천414억원으로 추정됐다. 당시 노동부는 산재보험의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는 이유로 연구용역만 실시하고 노사정 대화는 진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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