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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8-12 14:13
[현장-가락시장을 가다] 폭염에 화물차·지게차 열기, 땀범벅에 숨도 못 쉬었다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  
얼린 생수 한 병으로 버티며 상자 수백 개 날라 … 냉방 휴게실 없이 팰릿 위에서 잠깐 숨 돌려

엄재희 기자 입력 2026.08.12 06:30

낮 최고기온 34도를 넘은 10일 정오,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농산물 경매장. 한동안 이어진 기록적인 폭염이 한풀 꺾였다지만 경매장 안은 후텁지근한 공기로 가득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금세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흘렀다. 학교 운동장만 한 경매장 한 동은 층을 나누는 벽 없이 하나의 거대한 창고처럼 뻥 뚫려 있다. 3층 높이의 콘크리트 천장 아래로 농산물 상자와 팰릿이 층층이 쌓여 있다. 햇볕이 직접 내리쬐진 않지만 내부의 열기를 빼낼 환기나 냉방시설은 갖추고 있지 않았다. 거대한 온실, 아니 달궈진 가마솥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형 화물차와 지게차가 쉴 새 없이 오가며 뜨거운 매연까지 뿜어댔다.

1시간 만에 머리가 ‘핑’, 서 있기도 힘들어

이날 기자는 가락시장 하역노동자들과 함께 오후 1시부터 농산물 하역작업을 했다. 감자와 고구마, 알배추, 오이, 호박 등을 담은 상자가 3.5톤 트럭에 실려 들어왔다. 한 상자의 무게는 10킬로그램이다. 트럭당 많게는 800상자가 실린다고 했다. 과거에는 노동자들이 상자를 직접 내렸지만 최근에는 팰릿 위에 쌓아 지게차로 내린다. 다만 상추나 풋고추 등을 담은 4킬로그램의 작은 채소 상자는 노동자가 직접 내려야 한다.

지게차가 내려놓은 상자를 다시 크기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각 상자 겉면에는 특·상·중·하 등 농작물의 크기가 표시돼 있고, 상자를 크기별로 옮겨 다시 쌓는 일을 반복했다. 이렇게 분류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저녁 경매가 진행된다.

상자를 몇 차례 옮기자 작업복 안쪽이 땀으로 젖었다. 허리를 굽혀 상자를 들고 몇 걸음 옮긴 뒤 다시 돌아오는 단순한 동작이 반복될수록 숨이 가빠졌다.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왔다. 작업 시작 전 설치한 초대형 선풍기만이 땀을 식힐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천장에는 소형 선풍기 수십 대가 힘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매캐한 연기가 숨을 쉬기 어렵게 했다.

“경매시간이 가까워지는 저녁 시간대는 더 힘들어져요. 트럭이 들어오면 한시라도 빨리 작업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일이 계속 밀립니다.”

10년째 이곳에서 일했다는 하역노동자 김상원(53)씨의 말이다. 그는 한여름이면 두통이나 어지럼 등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찬물을 계속 마셔도 소용없어요. 속이 울렁거리거나 어지러우면 잠깐 앉아 있어야 하는데, 한창 물건이 들어오는 시간에는 눈치가 보이죠.”

일의 속도는 노동자가 정할 수 없었다. 화물차가 들어오면 물건을 내려 옮겨야 했다. 한 대를 처리하는 사이 다음 화물트럭이 들어오면서 작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최대 40도까지 치솟았지만 … 폭염 대책은 얼음물 한 병

땀이 온몸을 적셨지만 이날의 더위는 오히려 견딜 만한 편이라고 했다. 전주에 겪은 극한 폭염이 그만큼 살인적이었다는 의미다. 서울경기항운노조가 제공한 온도기록표를 보면 8월5일 오후 3시께 39.5도, 6일 같은 시간 39.7도를 기록하더니 7일 3시께는 40도를 찍었다. 10년 넘게 가락시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에게도 경험한 적 없는 더위였다. 김대현(65)씨는 그때의 폭염을 생생히 기억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죠. 뜨거운 바람이 밀려오니까 선풍기도 무용지물이었어요. 이러다 쓰러져 죽을까 봐 걱정하면서도 트럭이 들어오면 일을 해야 했죠.”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따라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 작업을 할 경우 노동자에게 매 2시간 이내 20분 이상의 휴식을 줘야 한다. 38도가 넘어가면 옥외작업 전면 중지를 권고한다. 정부는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으로 시원한 물과 냉방 휴게시설 설치, 휴식, 보냉장구 지급, 응급상황시 119 신고를 제시했다. 특히 분류·하역 같은 취약작업에서 폭염대책이 작동하는지 집중적으로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가락시장 하역 현장에서 체감한 폭염 대책은 정부 지침과 거리가 멀었다. 현장에서 폭염 대책은 꽁꽁 얼린 500밀리리터 생수 한 병과 식염 포도당 한두 알이 전부였다. 출근할 때마다 노동자들에게 한 병씩 지급한다. 추가 지급도 없다. 물을 다 마시면 근처 구내식당에서 물을 받아오거나 자판기에서 돈을 주고 사야 했다. 작업장에서 구내식당이 떨어져 있어 물을 떠오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더욱 열악한 건 휴게시설이다. 사업주는 작업장 가까운 곳에 냉방장치 등을 설치한 휴게시설을 마련해야 하지만, 가락시장 경매장엔 별도의 휴게시설이 없었다. 경매장 곳곳에 쌓여 있는 팰릿 위가 유일한 앉을 공간이자 쉼터였다.

휴게시간도 따로 없다. “정해진 시간에 딱 멈춰서 20분 쉬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는 차가 도착하면 내려야 해요. 폭염이라고 물량이 기다려 주는 게 아니잖아요.” 김대현씨가 말을 건넸다. 실제 이날 4시간가량 함께한 작업에서 4회가량 숨 돌릴 시간 이외에는 연신 물건을 날라야 했다. 이날 노동자 10여명이 상자 8천여개를 분류했다.

오후 5시,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심해졌다. 함께 일한 노동자들이 내일 출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하역노동자들에게 이날은 특별한 하루가 아니었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몇 시 퇴근’보다 ‘물량 언제 끝나나’

그런데 하루 노동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날 오후 1시에 출근한 노동자들은 밤 12시에나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락시장 하역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이전부터 지적됐다. 2022년 동남권 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발표한 서울시 동남권 운수물류노동자 노동환경 조사를 보면, 가락시장 하역노동자들은 주 5.6일을 일하고,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8.3시간이었다. 일요일이나 명절, 성수기에는 정오부터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년차 이봉암(65)씨는 “점심때 나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물량이 많으면 새벽까지도 해요. 낮에 체력을 다 써버리면 밤에는 사람이 멍해져요. 그런데 지게차도 다니고 차도 계속 움직이니까 더 위험하죠.”

폭염과 장시간 노동이 겹치면서 사고 위험도 커진다는 얘기다. 하역작업장에서는 화물차와 지게차, 전동차,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동시에 움직인다. 무거운 짐을 반복해 옮기는 상황에서 탈진이나 집중력 저하로 지게차에 치이거나 떨어지는 사고가 벌어진다.

반복되는 작업은 근골격계 질환에도 취약하다. 더군다나 하역노동자들은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일 정도로 고령층이 많다. 폭염과 장시간 노동, 산재 위험까지 3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직접고용은 아닌데 지시는 법인이

가락시장 하역노동자들의 고용형태는 일반적인 사업장 노동자와는 다르다. 하역노동자와 도매법인 사이에 직접적인 고용계약은 없다. 대신 노조가 직업안정법에 따라 근로자공급사업 허가를 받아 하역노동자를 공급한다. 임금도 작업한 상자당 수수료를 계산해서 정산받는다. 그런데 실제 작업은 법인의 지휘·감독 안에서 이뤄진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노조 한 관계자는 “법인이 물건을 여기다 내려놓으라고 하면 여기다 내려놓고, 경매 구역을 바꾸라고 하면 바꿔야 한다”며 “고용관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법인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기항운노조는 지난해 5월 중앙노동위원회가 도매법인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후 사측과 사용자성 여부를 두고 소송 중이다.

이러한 독특한 고용형태는 노동환경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으로 분류되고,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항의라도 하면 다음날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연차도 따로 없다. 힘들거나 아프면 쉬어야 하지만 하루 쉬면 그만큼 돈을 벌지 못한다.

가락시장에서 일하며 무엇이 가장 바뀌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이봉암씨는 “우리는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라며 “복잡하게 특수고용직이라고 부를 게 아니라 우리도 법이 정한 대로 쉬면서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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