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6-09 07:34
‘태안화력’ 김충현씨 죽음 뒤, 여전히 위험한 발전비정규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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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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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M 홀로 작성하고 관리감독 사실상 전무 … 우원식 국회의장 등 정치권 방문 잇따라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가 기계에 끼어 숨진 한전KPS 하청업체(한국파워O&M) 소속 노동자 고 김충현(50)씨 사고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8년 12월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가 숨진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하청노동자의 사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소의 다단계 하청과 쪼개기 계약이 근절되지 않는 한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8일 김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면서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김씨 사고 직후 노동계는 급박하게 움직였다. 사고 당일 김용균재단과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 등이 태안으로 향했고,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대책위는 전방위로 자료를 수집해 지난 5일 1차 조사 결과 내용을 발표했다.
사고경위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책위에 따르면 김씨는 작업 전 관리감독자와 작업자가 모여 작업내용과 작업절차 등을 논의하는 TBM(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ool Box Meeting) 문서를 혼자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류에 하청 관리감독자와 한전KPS 공사감독자의 서명이 있지만, 형식적인 서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또 관리감독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최진일 대책위 상황실장은 “김씨 소속 1과장은 김씨 작업을 알지 못했고, 현장소장도 기계 가공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위험성평가 점수도 3점(작은 위험)으로 간주됐다.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았던 정황이 짙다.
발전소 비정규직 ‘구조적 문제’ 한목소리 지적
노동계는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계약형태를 구조적인 사고 원인으로 지목한다. 대책위는 6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진행한 추모문화제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성토했다. 주최측 추산 500여명이 참여한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발전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영정이 놓인 무대 벽에는 “이재명 대통령,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문장이 새겨진 거대한 검은 천이 걸렸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는 (김용균 사고 이후) 재발방지 조건으로 2인1조 작업을 위한 적정인원을 배치하고, 발전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아들과 똑같은 죽음을 마주했다”고 흐느꼈다.
직장 동료들은 김씨의 죽음이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고 김충현 동지가 사고 현장에서 쓰러져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그는 장인 반열에 오른 기술자였고, 묵묵히 일하던 나무 같던 동지였다. 사고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지회장은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전KPS와 서부발전은 현장을 통제했고 사건을 은폐하기에 바빴다”며 “고인의 사망은 노동자 안전을 책임져야 할 원청이 관리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서 발생했다. 원청의 무관심 속에서 발생한 구조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추모제에 참석해 고인 영정 앞에 헌화했다. 이 부의장은 김용균 노동자 사망 당시 민주당과 정부의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이행 점검 회의’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자격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 부의장은 “끝없는 죽음 앞에 저희도 황망하고 답답하다”며 “이런 일들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국회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다.
두 의원이 무대 위에서 말하자 청중들은 발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한 민주당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책임을 촉구했다. 송상표 노조 금화PSC지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더 이상 죽지 않게 대통령이 해결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내가 김충현이다”라며 절규했다. 추모제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2킬로미터를 행진했다. 행진이 끝난 뒤 대책위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요구안을 전달했다. 대책위는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발전비정규직 정규직화 △인력 확충 △발전소 폐쇄 관련 모든 노동자 총고용 보장을 요구안에 담았다.
노동부 “정황 파악 중” 답변에 우원식 질타
성찰과 대책 마련을 다짐하는 정치권의 방문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오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사고 6일 만에 태안군 보건의료원상례원에 마련된 김씨 빈소에서 조문하고, 사고 발생 현장인 서부발전의 한전KPS 종합정비동을 찾았다. 김씨의 영정에 헌화하고 묵념한 우 의장은 “오늘 이곳에 내려오면서 참으로 착잡했다. 국회의 소임은 법과 제도를 통해서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고 국가의 가장 소중한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인데 이번에도 역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유가족과 상의해 가며 대책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조문록에는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우 의장은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룰 틀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도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지는 대로 이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룰 것이라 보인다”고 말했다. 우 의장은 조문을 끝내고 사고 현장을 방문한 뒤 고용노동부에 조속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을 주문했다. 하지만 김도형 대전지방고용노동청장은 “아직 정확하게 말씀드리기가 그렇다”며 사고 정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 우 의장은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대책위는 정치권에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제도와 법으로 증명하라고 재차 강조했다. 당장은 당정과 대책위가 참여하는 논의기구 설치를 요구했다. 대책위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지금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책임이며, 조문이 아니라 논의 테이블”이라며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라는 우 의장의 말이 정치적 수사가 아닌, 구체적인 법과 구조의 변화로 이어지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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