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13 07:59
울산 출퇴근 행렬, 그 흔한 풍경 속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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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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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아 변호사(금속노조법률원 울산사무소)
ㄱ씨 등은 현대중공업에서 분사한 HD현대건설기계의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다. 이중 상당수는 위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10~15여년 이상 근무하기도 했다. 이들은 2019년 8월경 노조에 가입한 후 하청업체를 상대로 교섭을 시도하고, 파업도 했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교섭해태로 일관했고, 원청 현대건설기계는 하청 물량을 줄였다. 결국 하청업체는 2020년 8월 폐업을 통보하며 이들을 집단 해고했다. 이후 ㄱ씨 등은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하고, 민사소송도 제기하며 현재까지 근 5년간 해고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위 진정사건과 관련해 울산지방고용노동청은 2021년 말 현대건설기계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시정명령을 하고, 과태료 처분까지 했다. 민사소송 관련해 서울중앙지법도 2024년 2월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현대건설기계의 직접고용 의무를 명하는 판결을 했다(항소심 계속 중). 위 노동청 사건을 송치받아 울산지청이 공소제기한 형사사건에서 울산지방법원 역시 2024년 6월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현대건설기계와 하청업체 전 대표이사 등에게 유죄 판결을 했다(항소심 진행 중). 그러나 현대건설기계는 십수년간 행했던 불법파견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현재에도 항소를 이어가며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등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의 불법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필자가 ㄱ씨 등을 만난 것은 울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위 민사소송 사건의 2심부터 필자가 담당하게 돼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증거가 많았다. 특히 관련한 노동청 진정사건과 형사사건의 기록을 송부받아 제출된 증거들이 많았는데, 해당 기록을 보니 노동청과 검찰에서 압수수색과 현장검증 등까지 하며 꽤 적극적으로 증거수집을 했고, 덕분에 노동자들로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회사 내부 문서들도 다수 증거로 제출돼 있었다. 노동자쪽 진정사건에서 노동부가, 그리고 검찰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마냥 신기하고 고맙기까지 했다. 불법이 확인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조치들이지만, 노동부나 검찰이 노동자들 주장을 외면하고, 적극적인 증거수집은 포기한 채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주는 편향된 판단을 해온 행태를 다수 지켜봐 왔기에 위 사건에서 행한 노동청과 검찰의 당연한 조치들까지 고마운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ㄱ씨에게 물어봤다. “노동부나 검찰이 꽤 열심히 했네요. 웬일이래요?” 그랬더니 ㄱ씨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을 잘 만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우리가 계속 찾아가고 그 앞에서 계속 피케팅하며 투쟁하고 그랬거든요.”
단지 우연히 사람을 잘 만나서거나, 그냥 이례적으로 노동부와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투쟁이,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 노동부와 검찰도 움직인 것이다.
그제야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장기간의 천막농성, 출근투쟁, 고공농성, 집회, 피켓팅, 사측의 폭력 장면, 사측에 사지를 들려 끌려 나오는 영상 등…. 그 오랜 해고기간 그들이 행한 고된 싸움의 흔적들이 인터넷 곳곳에서 남아 있었다.
되돌아봤다. 내가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 어딘가에 그들의 간절함이 녹아있을까? 법리와 증거를 토대로 판단하는 법원이지만, 그래도 담당 판사가 다시 한번 서면과 증거를 들춰보고, 조금이라도 더 고민할 수 있도록 내가 그들의 간절함까지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민사소송 2심이 막바지 단계에 있다. 그들이 일터로 다시 돌아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투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도 다시금 심기일전해 그들의 간절함에 필자의 간절함까지 보태어 법원에 제출할 서면을 작성하고 있다. 법원에 부디 이들의 간절함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상상해 본다. 울산 노동자들의 출퇴근 행렬, 그 흔한 풍경 속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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