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13 08:02
이주노동자 일터, 차별은 빼고 건강을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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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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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한국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 설비가 구비돼 있지 않고, 안전보건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며, 적정 노동강도를 유지할 정도로 노동자를 충분히 채용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은 항상 사고와 직업병 위험이 도사린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열악한 곳에서, 더 위험한 일을 하고 법적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일한다. 우리 법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제한, 연차유급휴가,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해 가산수당을 적용하지 않고, 농·축산·어업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휴게, 휴일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충분한 휴식이 없어 피로로부터 회복조차 어렵다는 말이 된다. 이런 현장에 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한다.
위와 같은 위험은 유사한 조건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고, 정주 노동자들과도 얽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 노동자들과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혹은 체류 허가가 없는 채로 미등록 체류 상태로 지낸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체류 기간 동안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는 일터가 위험하거나 생각한 조건과 달라도, 폭력과 차별에 노출돼도 뜻대로 그만둘 수가 없다. 사업주가 법을 위반하거나 사업주가 해고한 경우, 회사가 휴·폐업할 경우에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에 정한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일을 하다가 몸이 아파도 사업주가 해고하지 않으면 그만두는 일도 어렵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금지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한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회사와 협상할 권리를 철저히 차단한다. 때문에 위험하거나 폭력적인 일터를 거부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일터는 언제까지나 열악하게 남아있게 된다.
3월21일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이날을 앞두고 이주노동자들의 몸과 그들의 시간을 생각한다. 한국에서 26년을 살았지만 ‘유령’으로 존재하다가 체류 자격을 얻어 입사한 회사에서 8개월만에 사고로 사망한 고 강태완, 상습적인 폭행과 직장내 괴롭힘 끝에 최근 목숨을 끊은 네팔 이주노동자,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가 사망한 고 속헹. 그리고 아리셀 화재 참사 사망 노동자들. 차별과 배제에 따른 수많은 죽음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노동력으로만 생각하고 쓰임만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1980년대 후반부터 40년 가까이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차별적 제도에는 큰 변화는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모국어로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5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정 노동시간 노동과 휴일, 휴가가 보장돼야 하며, 모든 사업장에 직장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산재보험 역시 적용돼야 한다. 무엇보다 차별적인 고용허가제가 폐지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이후 매주 열리는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서며 이주노동자를 생각한다. 그곳에서 많은 시민이 각자의 정체성을 말하고 낯선 주제에 대해 귀 기울이며, 젠더와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성을 표출하고 있다. 그곳에 차별과 혐오는 발붙일 곳이 없다. 2017년 박근혜 퇴진 투쟁 시기 광장에서 맞닥뜨린, 같은 뜻을 갖고 모인 이들로부터 들은 여성·성소수자·장애인 혐오, 차별 발언을 생각하면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우리가 함께 그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어떤 자리였을까? 많은 이주노동자 역시 그곳의 주인공이라고 여겼을지, 안전하다고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비상계엄 때부터 두려움이 더 컸을 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이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자는 신호를 보내주었을까?
차별적 제도를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에 더해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이주노동자의 목소리가 전해질 수 있고, 이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고 차별 없이, 그래서 건강하게 살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우리도 나설 시간이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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