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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11-08 08:52
[오피니언]우리는 노동력을 불렀지만, 사람이 왔다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5  
권오훈 공인노무사(전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권오훈 입력 2026.11.04 06:30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내국인 농업 노동자 인건비 지원을 지시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다가 (일)해도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임금을) 전부 다 송금해 버리니까”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비교 화법’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정부가 이주민 인권에 관심을 보여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을 바라보는 민낯을 드러냈다.

농어업이 저임금 이주노동에 기대면서 내국인이 떠나고 지역이 낙후되는 악순환을 끊자는 취지는 새겨들을 만하다. 인구 절벽을 먼저 겪은 일본이 반면교사다. 한 일본 요양시설 관계자는 “일본인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일하러 오지 않는다”며 직원의 15%가량은 늘 외국인으로 채워야 한다고 했다(SBS, 2023년). 돌봄노동이 저임금 일자리로 굳어지자 개호복지사 양성학교는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필수노동의 처우를 높이지 않으면 낙인은 굳어진다.

그러나 화살이 틀렸다. “전부 송금한다”는 말부터 사실이 아니다. 정부 조사에서 외국인의 소득 대비 송금 비중은 평균 25.5%였다. 이들이 수확한 농산물과 만든 제품은 한국에 남는다. 저임금 구조를 설계한 것은 고용허가제와 계절근로제를 운영해 온 정부다.

우리에게도 ‘노동력’으로 불려 간 역사가 있다. 1966년부터 10년간 1만1천여명의 한국 간호 인력이 서독으로 갔다. 오일쇼크로 경기가 나빠지자 1977년 서독 정부는 이들을 돌려보내려 했다. 간호사들은 서명운동에 나섰고, 함께 일한 독일 의사와 환자·시민 1만1천여명이 서명했다. 결국 이들은 장기 체류권을 얻었다. 이미 독일 사회의 동료이자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는 1965년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고 썼다. 노동력은 들이고 내보낼 수 있지만, 사람은 동료를 사귀고 가족을 꾸리고 뿌리를 내린다.

이주노동자는 돈 벌러 왔다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다. 필자가 이주노동자 노동법 상담 활동을 하던 시절 만난 한 파키스탄 노동자는 체류 기간을 넘긴 미등록 상태였다. 동생이 반군에 납치된 뒤 고향에 돌아가기가 너무 두렵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밤에 납치될 걱정은 없어요.”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말이다. 그에게 한국은 일터이기 전에 피난처였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화와 안전이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등지고 찾아온 삶의 이유다. ‘송금하는 노동력’으로만 보는 순간 그 삶은 지워진다.

건설노조 일부 노조간부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를 요구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조합원 일자리를 지키려는 절박함은 이해한다. 그러나 단속의 칼끝은 사업주가 아니라 가장 약한 노동자를 향한다. 세계 곳곳에서 이주노동자를 향한 불안이 혐오정치의 연료가 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맞설 상대는 저임금 구조를 만든 자본과 제도인가, 그 구조에 함께 갇힌 노동자인가.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노동력으로 보는가, 사람으로 보는가. 반세기 전 서독 시민들이 한국 간호사들에게 내밀었던 손을 이제 우리가 내밀 차례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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