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2-19 10:26
[외로운 싸움 하는 전직 캐디 이명주씨] "나는 노동자" 헌법소원 냈지만 각하 … “또다시 청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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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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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싸움 하는 전직 캐디 이명주씨] "나는 노동자" 헌법소원 냈지만 각하 … “또다시 청구할 것”
보호할 가치가 있는 근로자와 그렇지 않은 근로자로 나누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다른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는데 헌법재판소가 취지를 왜곡했어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교동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명주(42·사진)씨. 전직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인 이씨는 지난달 24일 나온 헌법재판소 결정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위헌 여부 판단해 달랬더니
난데없이 “특별법 만들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이씨는 지난해 12월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1항1호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해당 조항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 조항이 이씨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기 때문에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론은 ‘각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성질상 근로기준법이 전면적으로 적용되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무조건·환경에 대해 근로기준법과 동일한 정도의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입법을 해 달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는 이유였다. 다양한 특수고용직에게 근기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려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특별법 제정은 헌법소원 청구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결정이다.
이명주씨는 “근기법에 문제가 있으니 위헌인지 아닌지 판단해 달라고 한 것이지, 새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며 헌법재판소를 비판했다.
결정과 다른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의 판단도 이씨와 같다. 김이수 재판관은 “근기법 조항은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노무제공자만을 근로자로 인정한다”며 “이 때문에 강한 경제적 종속성으로 인해 사실상 인적종속성도 인정될 여지가 큰 근로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노무제공자들에 대해서조차 근기법 적용을 전면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근기법상 근로조건 등에 관한 보호가 ‘전부 아니면 전무’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심판대상 조항이 위헌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들이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해 발의하는 각종 법안을 보면 김이수 재판관의 의견이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는 특별법 형태로 특수고용직보호법 제정을 권고했지만 국회는 특별법보다 근기법상 근로자 개념 확장에 주목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올해 9월 발의한 근기법 개정안에 “독립사업자 형태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라 하더라도 특정 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그 사업의 상시적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 또는 노무를 제공받은 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고 규정했다. 근기법상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명주씨는 “헌법재판소가 무슨 자격으로 특별법 제정을 주장했는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국회 입법권을 침해한 겁니다. 국회에 근기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입니다.”
학비 벌려고 시작한 캐디, 해고만 6번
사무직 노동자였던 이씨가 캐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었다.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3년 정도 독하게 골프장에서 일해 1억원을 모을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캐디를 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곧 재미를 붙였다. “캐디를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놀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체질이더라고요. 처음부터 이 일을 할 걸 하고 생각했어요.”
이용객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골프 공부를 열심히 했고, 레크리에이션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2013년 3월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고, 외로운 법정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충남 부여의 한 골프장이었다. 골프장 직원의 실수로 이씨의 발에 10센티미터 두께의 철근이 떨어졌다. 왼쪽 발 엄지발톱이 부러졌고, 결국은 발톱을 빼야 했다.
숨이 막힐 듯한 고통에도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돌았다. 그러던 중 캐디도 산업재해를 신청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골프장측은 산재적용제외 신청서를 이씨가 작성한 것처럼 허위로 꾸며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이씨는 골프장 대표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골프장은 그를 해고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노동위는 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이씨의 신청을 각하했다. 중앙노동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행정소송으로 방향을 잡은 그는 소송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발가락 통증을 참아 가며 재취업했다.
전에 일했던 골프장측에서 소문을 낸 것일까. 가는 곳마다 이씨를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따돌림을 당하고 해고되기 일쑤였다.
처음 해고를 당한 뒤 돌아다닌 골프장만 7곳. 그중에서 2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고당했다. 나머지 두 곳 중 한 곳에서는 따돌림과 인격모욕을 당한 끝에 스스로 그만뒀다. 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고 소송을 제기한 골프장만 5곳이다.
“헌법소원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소송 준비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소송을 의뢰받은 변호사와 공인노무사들은 손사래를 쳤다. 2014년 대법원이 “골프장 캐디는 노조법상으로는 근로자이지만, 근기법상으로는 근로자가 아니다”고 판결한 영향이 컸다.
질 게 뻔한 싸움. 변호사와 노무사들은 “합의금을 받고 끝내라”고 조언했다. 소송에서도 졌다. 이씨는 “남은 방법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아 내는 것뿐”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다행히 헌법소원을 돕겠다는 변호사를 만났다.
캐디를 포함한 특수고용직 관련 판례와 각종 자료를 공부했다. 특수고용직 판례에 대해서는 줄줄이 꿸 정도가 됐다. 안타깝게도 헌법재판소는 그의 심판청구를 각하해 버렸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죠”
소송은 장기간 계속됐다. 왼쪽 발이 성치 않은 이씨에게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희소 난치질환이 찾아왔다. 더 이상 캐디 일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매월 지급되는 기초생활급여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이씨는 "너무 외롭다"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5개 골프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과 이어진 행정소송 중 2건은 패소가 확정됐다.
나머지 사건 중 하나는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상고기록 접수통지를 받은 기억이 없는 이씨는 대법원 기각 판결과 관련해 무효확인 소송을 하고 있다.
마지막 두 건 중 하나는 중앙노동위 기각 판정인데, 아직 소송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씨는 이미 소송에 들어간 나머지 하나의 사건에 집중할 생각이란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솔직히 기대는 안 해요. 마무리를 한다고 봐야지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런 사례가 있었다는 기록만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
이씨의 소송이나 헌법소원 청구가 전처럼 실패한다면 특수고용직을 보호할 방법은 국회가 법을 개정하는 것뿐이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은 거의 대부분 골프장을 갖고 있다고 해요. 중견건설업체들도 골프장을 많이 운영하고요. 18홀을 기준으로 하면 골프장마다 60여명의 캐디가 필요합니다. 기업들은 캐디가 근로자가 되는 것을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거예요. 인건비가 많이 들게 되니까요. 어떨 때는 대한민국이 새로 만들어져도 캐디는 근로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씨의 우려가 현실이 될까, 아니면 다른 희망이 생길까. 열쇠는 정치권과 노·사·정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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