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실 대신 플라스틱 소변통 쓰라는 택시회사] 기사들 "인권유린, 끝장이구나 하는 자괴감 들어"
"요소 한 방울이 옥토 만드는 거름" 궤변 … 근로기준법·채용절차법 위반 사항도 수두룩
서울 강동구 소재 ㅁ택시회사에서 일하는 택시기사 이호영(54)씨는 회사에서 소변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여간 급하지 않고서는 차고지에서 배차를 받고나서 시내 공중화장실을 찾아 볼일을 본다. "회사에서는 소변을 보기가 수치스럽다"는 이유다.
이 회사 차고지 마당에는 '요소 모집소'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플라스틱 소변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가림막조차 없다. 기사들은 "귀하의 요소 한 방울이 옥토를 만드는 거름이 되니 한 방울도 통 밖에 흘리지 않도록 합시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바라보며 볼일을 본다. 이씨는 "급하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데, 통에 소변을 볼 때마다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내 인생도 끝장이구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소변통에 볼일 보는 기사들=20일 노동계에 따르면 ㅁ택시회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기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979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40여명의 기사들이 채용돼 있다. 이씨는 "서울 소재 택시회사들 중에서도 기사들의 근로조건이 가장 안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사례로 든 게 바로 화장실 문제다.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회사는 임대건물에 입주해 있는데, 다른 입주자들이 기사들의 건물 화장실 사용을 꺼린다는 이유로 소변통을 갖다 놓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플라스틱 소변통은 타이어 보관소 옆에 있었다. 소변통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연결해 놓고 하수구로 소변을 배출시켰다. 기사들은 버려진 나무 문짝으로 가려 놓은 곳에서 볼일을 봤다. 정화조를 거치지 않은 분뇨를 하수구로 배출하는 건 하수도법 위반이다.
회사는 지난달 소변통을 사방이 뚫려 있는 배차실 옆으로 옮겨 놓았다. 이씨는 "(팻말에 쓰인 대로) 소변을 모아서 밭에 뿌리는지, 한꺼번에 하수도로 버리는지 알 게 뭐냐"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인권도 없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취업규칙 열람도 거부=비단 화장실 문제뿐만이 아니다. 근로기준법과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위반 의혹도 짙다. 회사가 배포한 택시기사 모집 홍보지에는 '야간 26일 근무시 급여 및 수당 207만원'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실제 야간에만 26일 만근을 한 기사 A씨의 11월 급여명세서를 보면 회사가 홍보한 급여와 1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기본급(49만1천113원)에 근속수당(1만5천554원)·승무수당(46만1천307원)·야간수당(12만5천802원)·상여금(14만5천544원)까지 다 합해도 123만9천320원밖에 안 된다. 여기에 4대 보험과 조합비를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111만1천174원에 그친다. 사납금을 맞춰 넣고 가스도 회사가 지급한 양만큼만 써 가불금이 전혀 없는데도 실수령액이 110만원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이씨는 "취업사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채용절차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에서 제기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해서는 안 된다. 송현기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삼신)는 "채용공고 때 제시한 임금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은 법 위반"이라며 "홍보지에 써 있는 것처럼 야간 26일 근무를 모두 했는데도 100만원가량 차이가 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취업규칙 열람도 막았다. 이씨는 지난 7월부터 계속 회사에 취업규칙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노동자의 취업규칙 열람을 제한하거나 사업장에 비치해 놓지 않은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이씨는 이날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동부지청에 ㅁ회사 취업규칙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했다. 지난 19일에는 강동구청에 2013년 이후 임금협정 및 단체협약, 노사합의서, 부가세지급 내역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취업규칙 비치의무 위반, 최저임금 주지의무 위반으로 회사를 서울동부지청에 고발했다.
◇"밭 일구는 사람이 모아 달래서…"=회사 관계자는 화장실 문제와 관련해 "건물에 화장실이 있는데도 기사들이 멀리 가기 싫어서 이용하지 않는 것이고, 밭을 일구는 아저씨가 소변을 모아 달래서 소변통에 모으고 있다"고 해명했다. "회사를 음해하려는 기사들의 얘기"라고도 했다. 취업규칙 열람과 관련해서는 "취업규칙은 보여 줘야 하는지 판단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강동구청 청소행정과 개인하수처리시설팀 관계자는 "소변을 하수구로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모아서 밭에 뿌리는 것도 위법"이라며 "현장에 나가 행정지도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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