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 빌딩에서 KLI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열린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노동시장 구조개선' 반대를 주장하며 항의하고 있다
민간으로 확대…노조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 실현 가능성 여부가 쟁점
사용자측 강행땐 법적분쟁 비화 소지 커
정부가 민간기업으로의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해 노조 동의 없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청년 실업 대책으로 임금피크제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는 정부가 공공부문 의무도입에 이어 민간부문에도 임금피크제를 확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정부는 1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민간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골자로 한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기본 정신은 장년과 청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상생 고용 실현"이라며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취업규칙 가이드라인 추진도 상생 고용의 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정년 60세 연장으로 청년 고용절벽이 심화될 우려가 있어 임금피크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이기 때문에 청년 취업난과 장년근로자 고용불안 심화가 우려된다고 정부는 짚었다.
쟁점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이다.
취업규칙은 채용, 인사, 처우, 해고 등과 관련된 사규를 말하는데, 근로기준법은 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에는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취업규칙에 따라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이 '사회 통념에 비춰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이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노조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도입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임금피크제가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으며 사회 통념을 감안해도 합리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앞서 '취업규칙 변경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 발제문을 통해 "정년 60세에 따른 임금피크제 등은 임금체계 개편 의무를 규정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의 입법취지,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재정·인력채용 부담 등을 고려할 때 고도의 필요성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로자는 정년연장에 따른 사실상의 이익이 있으므로 사용자가 임금체계를 합리적이고 적정하게 설계하고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합의(동의)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여부에 따라 변경된 취업규칙의 효력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즉 사용자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상당한 협의 노력을 했으나, 노조가 대안 제시도 없이 논의 자체를 거부할 경우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정년 법제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년은 보장되지 않으면서 임금만 낮추려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가 크다고 제시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후의 임금 수준이 비슷한 규모의 다른 기업과 비교해 낮지 않는 등 합리적인 수준으로 임금을 감액하는 경우에도 합리성이 인정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나 행정지침이어서 법적 효력이 없다.
정부는 노사에 대한 직접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노사 양측이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한 협의를 할 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논의를 촉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의 반발이 커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기업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피크제를 강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 통상임금이나 연장근로 수당 논란 때도 고용부의 '지침'이 있었지만 노동계가 이에 불복, 상위법인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소송을 낸 결과 고용부의 지침을 뒤엎는 판결이 잇따랐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며 "정부는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고 업종의 특성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방법을 모색하는 한편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도출하고 해결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서울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임금피크제는 대부분 노사간 협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줄거나 말거냐의 통상임금 때와는 다를 것이라 보고 있다"며 "수많은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서 지침을 보완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현장갈등은 크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임무송 고용부 노사협력정책관은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임금체계 관련 불이익 여부와 사회통념상 합리성 판단 등에 대한 구체적 판단기준을 정리할 계획"이라며 "6월 말까지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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