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1-0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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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 이연주씨가 헌법재판소로 간 이유] 산재 신청했다고 해고, 노동위는 근로자 아니라고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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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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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 이연주씨가 헌법재판소로 간 이유] 산재 신청했다고 해고, 노동위는 근로자 아니라고 기각
"근로기준법 2조1항 기본권 침해" 헌법소원 제기
“연주씨는 캐디(골프장 경기보조원) 해서는 안 될 사람이네”
이연주(41·가명)씨가 캐디를 하면서 캐디마스터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씨는 캐디라는 직업에 대해 "경기보조가 아닌 골프 경기를 더 즐겁게 만드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라고 여기고 일을 즐긴다"고 말했지만 이씨의 경력은 순탄치 못했다. 사무직을 전전하다 39세 때 캐디 일을 시작한 그는 한 골프장에서 3개월 이상 근무하지 못했다. 2013년 일을 시작했는데 무려 5차례나 해고됐다. 그가 밝힌 해고 사유는 "캐디는 사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부상을 당해 산업재해 보상을 해 달라고 했다가 해고됐고, 이후로 해고가 반복됐다. 해고되면 어김 없이 노동위원회를 찾았지만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번번이 각하됐다. 캐디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사업주라는 이유였다. 노동자인 듯, 노동자 아닌 이씨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을 고용노동부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부른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사용자 예속성, 즉 노동자성이 워낙 강해서 대법원까지 판례로 노조 설립을 허용하고 있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도, 근로기준법도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위원회에서 판판이 각하 판정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근로자로 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지만 제대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환노위가 통과시킨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주가 산재보험을 의무가입하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2년째 쥐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씨 같은 피해자는 양산되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4일 헌법재판소에 근로기준법 2조1항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받았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정부와 사법부가 근로자의 범위를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좁게 해석하면서 평등권과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이연주씨가 3일 <매일노동뉴스>를 만나 들려준 얘기는 우리나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처지를 웅변하고 있다.
불행한 사고로 시작된 좌절
누구나 그렇지만 이씨는 캐디 일을 돈 벌이를 위해 시작했다. 30대 중반이 지나 동양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그에게 캐디는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1회 라운드를 돌면 9만~10만원가량의 캐디비를 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충남 대전의 자운대골프장에서 캐디교육을 받았다. 한 달가량 골프경기 방식과 캐디 업무를 배운 뒤 경기에 투입됐다. 이용객들과 함께 18홀을 돌면서 골프채를 골라 주고, 골프공을 찾는 일을 했다. 경기 중에 발생하는 모든 일을 지원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회 라운드를 도는 거리는 4킬로미터다. 캐디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흐름이 끊기지 않고 원활하게 라운드가 진행될 수 있게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용객들이 캐디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기라도 하면 그 골프장은 다닐 수 없게 된다. 그는 “돈 벌려고 하는 일이었지만 경기 진행을 너무나 잘하고 있다고 느낄 때 큰 보람을 느꼈다”며 “한편으로는 이용객이 만족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버려질까 불안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 3월29일 이씨에게 변곡점이 찾아왔다. 이날 오전 이씨는 L골프장에서 1번 홀 출발을 위해 대기하다 사고를 당했다. 골프장 직원의 작업차량에 있던 철판이 이씨의 발로 떨어진 것이다. 이씨의 엄지·검지발가락 발톱이 부러지는 사고였다. 그는 "통증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며 휴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해 5월22일 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씨가 산재를 신청하기에 앞서 L골프장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낸 사실이 확인됐다. 그것도 이씨가 직접 작성한 것처럼 꾸몄다. 골프장측이 이씨의 산재 신청을 막으려고 문서를 위조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 골프장 직원은 사문서위조교사 및 위조사무서행사죄로 기소돼 같은해 11월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고소를 취하하라는 골프장의 지시를 거부해 L골프장에서 해고됐다.
그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노동위원회에 냈지만 지노위에서도 중노위에서 도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씨가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 신분이라는 이유에서다.
블랙리스트 오른 노동자, 외로운 싸움의 시작
이씨는 "관리자인 캐디마스터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캐디들을 관리하는 캐디마스터들은 새로 입사하는 캐디들의 근무 이력이나 이전 근무지를 조회한다. 이씨가 L골프장 직원을 검찰에 고발했던 일은 빠르게 퍼졌을 터다. 그런 탓인지 그는 짧은 기간 근무를 하고 골프장에서 쫓겨났다. 이씨가 작성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이유서에 따르면 그는 '라운드 진행이 미흡하다'거나 '보험회사 직원과 다툼을 벌였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2014년 12월 당한 해고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당시 골프장 이용객이 친 골프공에 얼굴을 맞을 뻔한 경험을 했다. 적반하장 격으로 이용객은 캐디에게 웃을 것을 요구했다. 이씨는 “사고가 날 뻔했는데 어떻게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해고 이유가 됐다. 지난해에는 전북의 A골프장을 비롯해 세 곳에서 쫓겨나 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이씨는 함께 이런 얘기를 할 동료가 절실했다. 하지만 동료 캐디들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캐디마스터들 사이로) 이전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소문이 났는지 (기숙사를 같이 쓰는) 동료 캐디가 이것저것 물었다”며 “노동운동을 같이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같은 캐디끼리 경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부당해고 재심판정취소 소송이 패소하자 곧바로 같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청구했다. "노조법과 산재보상법이 경기보조원을 보호하고 있는데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로 보호하고 있지 않으니 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청구 요지였다. 그러나 대전지법은 "근로자 범위를 달리 정한 것은 합리적 차별"이라며 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이씨가 직접 헌법재판소에 근로기준법 2조1항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유다.
"근로기준법, 헌법에 맞게 고쳐야"
“근로기준법이 캐디를 보호대상에서 제외해 헌법이 정한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했다.” 이씨는 지난달 4일 헌법재판소에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캐디도 인권과 기본권을 보호받아야 하는 국민"이라며 "불안정한 신분 탓에 부당해고를 당해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한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만에 하나 노동자로 인정받는다며 판례가 돼 다른 캐디들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라는 말도 했다.
이씨는 발가락 부상으로 해고를 당한 뒤로 동양철학 대신 노동법을 공부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과 기사를 통해 소송에 필요한 법률 지식을 익혔다. 그는 “전에는 회사에서 다치면 당연히 산재가 될 줄 알았고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와 노조법의 노동자가 어떻게 다른지 몰랐다”며 “위헌 결정을 이끌어 내면 엉성하고 모호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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