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노동시급이 최저시급보다 적을 수도 있다”
ㆍ상여금·복리후생비 포함한 개정 최저임금법 ‘중대한 허점’
ㆍ대법, 2013년 ‘통상임금 축소’
ㆍ사용자가 ‘악용’하면 현실로…노동부, 국무회의 통과 전 알아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시킨 법률이 별도 보완 조치 없이 시행될 경우 내년부터는 연장노동수당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임금의 50%를 가산 지급하도록 한 연장노동수당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위헌 시비와 함께 현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 이 같은 중대한 허점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개정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연장노동수당 지급기준이 되는 통상시급이 최저시급에 미달할 수도 있습니다.”
노동부 근로기준혁신팀의 이준행 근로감독관은 지난 4일 최저임금법 개정에 따른 ‘통상시급과 최저시급의 역전’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별다른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노동부 내부에서 이미 알고 있지만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뉘앙스였다.
그는 ‘연장노동수당을 최저임금보다 적게 지급한다면 최저임금법 위반 아니냐’고 묻자 “최저임금의 근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개정된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했다.
연장·야간·휴일근로 시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 지급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56조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주 40시간을 넘겨 일한 연장근무에 대해 최저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
하지만 개정된 최저임금법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식대와 교통비 등 복리후생수당과 상여금을 포함시키면서 비상식적인 일이 법의 이름으로 가능해졌다. 사용자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복리후생비와 상여금은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면서 연장노동수당 지급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선 제외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상여금과 식대·교통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만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면 통상임금은 최저임금을 밑돌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연장수당이 최저임금보다 적게 되는 ‘아이러니’가 가능해진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이래 통상임금이 최저임금을 밑돈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노무제공의 직접적인 대가관계가 명확하고 정기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기본급 성격의 급여만 최저임금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급 성격과 거리가 먼 복리후생비나 상여금까지 최저임금에 포함되면서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내년도 최저시급을 8000원으로 가정할 경우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을 변경해 통상시급을 5000원으로 정해놓으면 주 40시간을 초과한 노동의 경우 50%를 가산해도 시급은 7500원에 불과하다.
■양승태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 이후 임금 축소 ‘꼼수’ 길 열려
개정 최저임금법 ‘허점’
통상시급 5000원을 기준으로 월 기본급 104만원에 복리후생비(최저임금의 7% 초과분)나 상여금(최저임금의 25% 초과분)을 조정해 월 최저임금(167만원)만 맞춰주면 사용자는 최저임금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복리후생비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려면 임금체계에 약간의 손질이 필요하다. 식대나 교통비, 상여금을 지급일 당시 재직자에게만 주는 것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2013년 갑을오토텍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의 경우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들어 통상임금 인정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해당 판결이 있기 전까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정해놓은 복리후생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2013년 대법원은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인 경우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일 것을 지급조건으로 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리하지 아니한 채 단체협약 등에 의하여 일률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정만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본 종전 판결을 모두 변경한다”고 판시했다.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상여금이나 각종 복리후생비를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인 경우에만 주는 것으로 변경, 통상임금을 축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연장수당의 지급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축소되면 신규 채용보다는 이미 채용한 노동자들을 연장근로시키는 게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나서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의존해 기업을 운영하던 사업주들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다.
해당 판결은 최근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거래한 의혹이 있는 8대 판결 중 하나로 지목된다.
노동계에서는 해당 판결이 나온 후 ‘신의칙 위반’을 들어 과거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한 부분을 주로 문제 삼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임금체계를 개편해 통상임금을 축소할 수 있는 ‘꼼수’를 제공한 데 있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단체가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논의할 때 집요하게 복리후생비나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려 했던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사용자단체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에 포함된 복리후생비나 상여금을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급여로만 만들어놓으면 최저시급보다 낮은 시간당 임금으로 연장노동을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준행 감독관은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복리후생비나 상여금이 재직 중인 자에게만 지급될 경우 통상시급이 최저시급에 미달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하지만 통상임금 범위를 최저임금과 일치시키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간당 임금을 주면서 연장노동을 시킬 수 있다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기본급 중 일부를 변동성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로 쪼개는 방향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 입장에서는 2013년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어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비용으로 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 과정에 ‘양승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유다.
중소기업을 상대로 노무 자문을 해주고 있는 노무법인 가을의 이승연 노무사는 “당장은 별다른 문의가 없지만 2019년 최저임금이 결정되고 나면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문의가 많을 것 같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4일 오전 노동부 고위 관료에게 “개정 최저임금법이 시행되면 ‘최저시급 8000원에 시간외 노동수당 7500원’이 가능한지 공식 입장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 답변이 없었다.
다음날인 5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의결됐다. 이 총리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보장하면서도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부담을 덜고자 여야가 오랜 기간 논의 끝에 도달한 결론”이라고 했다. 이 총리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듯 일부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보완대책도 지시했다.
하지만 정작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노동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연장근로를 하는 노동자에 대해 어떤 대책이 있는지 의문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현 정부에 노동정책 방향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나 철학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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