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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29 14:47
[커버스토리-비정규직 제로의 배신] 대통령 옆 환히 웃던 그들 11명 중 절반은 인천공항 떠났다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332  


▲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 노동자 11명과 둘러앉아 사진을 찍었다. <자료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매일노동뉴스 가공>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커버스토리-비정규직 제로의 배신] 대통령 옆 환히 웃던 그들 11명 중 절반은 인천공항 떠났다


사람들은 환하게 웃었다. 대통령을 보는 눈에는 애정이 담뿍했다. 한 장 사진에 담긴 그들의 운명이 이렇게 한 번은 짧은 희극으로, 또 한 번은 긴 비극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뀔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대통령마저도 그랬을 터다.

<매일노동뉴스>가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옆에 있던 비정규 노동자들을 추적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노동자 3명은 심층 인터뷰를 했다. 강지현씨는 23일 오후, 송군섭씨는 22일 오후, 정명선씨는 23일 오전 인천공항 인근에서 만났다. 청와대에도 공개돼 있는 사진 한 장 속 11명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송군섭씨는 4년 전의 언약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소방대원 중에서 한 명은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해서 제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다. 청와대 입성 후 첫 공식 외부 일정이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다. 우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을 드린다”고 밝혔다. 정일영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도 “공항 가족 1만명 모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4년 전 약속은 여전히 생생한데

송군섭씨를 비롯한 인천공항 비정규 노동자 11명은 문 대통령과 둘러앉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그는 문 대통령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상당히 기뻤습니다. 무조건 정규직이 될 줄 알았거든요. 정규직 전환에서 탈락할 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 웃음 너머에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적힌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강지현씨도 이 사진 속 현장을 선명하게 회상했다. “공항 주차장에 경찰버스가 너무 많아서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며칠 전에 당선된 대통령이 눈앞에 있었어요. 빈 의자에 ‘대통령’이라고 적혀 있길래 그럼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목숨값 100만원의 슬픔

송군섭씨 동료였던 이영재씨가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한 말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저희는 민간소방 신분입니다. 소방공무원은 사망하면 순직이지만 저희는 일반 사망으로 처리합니다. 일하다 죽으면 회사에서 100만원을 줍니다.” 강지현씨는 이씨의 말을 듣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놀란 듯이 입술을 동그랗게 모은 대통령을 담던 카메라가 프레임 바깥에 있던 그를 향했다. “난데없이 악플을 받았어요. 정규직 전환이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거든요.” 하지만 그 눈물은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사실 저만 불쌍한 줄 알았어요. 모든 비정규직 처우가 이렇게 형편이 없구나. 소방대원들은 목숨값 100만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청와대로 행진하는 비정규 노동자들

대통령 앞에서 발언권을 얻은 정명선씨는 떨리는 손을 감추려 마이크를 부여잡았다. “인천공항은 환경미화원들의 역할이 큽니다. 공항의 청결을 책임지고 있는 저희가 제대로 대우받고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간절한 바람은 이뤄졌을까. 정명선씨는 대답 대신 검게 그을린 팔뚝을 들어 보였다. “날씨가 참 좋았거든요.” 그는 지난 2일 연차를 냈다. 인천 중구청에서 중부지방고용노동청까지 반나절을 땀 흘려 걸었다.

사흘 뒤에는 국회의사당에서 청와대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유일한 휴일인 토요일이었다. 땡볕 아래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직도 인천공항에 비정규직 문제가 존재한다는 걸 이렇게라도 해서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정명선씨를 비롯한 인천공항 노동자들은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닷새간 공항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다단계 하청이라는 계약 형태를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된 카트 운영·송환대기실 노동자들이 앞에서 이끌었다. 이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를 견디며 일했지만 고용불안은 여전하다”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사에서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직접고용 결정과 ‘인국공 사태’ 발발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대상자 9천785명 중 소방대·야생동물 통제 노동자 241명은 공사에 직접고용됐다. 공항운영·시설시스템 관리·보안경비·보안검색 노동자 등 9천644명은 2018년 1월1일부터 지난해 7월1일까지 용역업체 계약 종료 시기에 맞춰 인천공항시설관리㈜·인천공항운영서비스㈜·인천공항경비㈜ 등 신설된 3개 자회사에 순차적으로 고용됐다.

지난해 6월 공사가 보안검색 노동자 1천902명을 청원경찰 형태로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인국공 사태’가 발발했다. 공정성 논란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10개월 남짓 남았지만 정규직 전환 정책은 미완성이다. 보안검색 노동자는 여전히 자회사 소속이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도 생겼다. 소방대 노동자 17명은 지난해 8월 직접고용 적격심사에서 탈락했다. 소방대 노동자 28명과 야생동물 통제 노동자 2명은 공개경쟁채용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진 속 그때 그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인천공항 비정규 노동자들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비정규직 제로 시대’의 명암을 간명하게 드러낸다. 여객운영서비스·환경미화·시설관리·수화물관리·보안검색 노동자 11명 중 6명은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한 보안검색 노동자는 자회사 인천공항경비㈜에 편제된 채 공사에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4명은 자회사 전환 과정을 전후해서 퇴사했다. 퇴사 사유는 제각각 다르다. 지지부진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지친 비정규 노동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소방대원 송군섭씨는 공사의 공개경쟁채용 과정에서 탈락했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소방대원들과 ‘고용안정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공항으로 출근한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명암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B학점을 매겼다. 이 교수는 “20만명이라는 전환 실적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자회사 전환 방식의 양면성도 지적된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자회사를 ‘악’으로 보지는 않는다. 처우개선에 한계가 있겠지만 이 방식이 없었으면 비정규직 12만명의 정규직화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공정성 논란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경영학)는 “채용 과정의 공정성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과연 공정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규직화 정책이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대기업부터 상시적 업무와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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