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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6-30 10:19
“모든 발전 하청노동자 사직서 써야 변화될까”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3  

발전비정규직은 왜 정규직화를 요구하나 … “민영화가 죽음의 일터 만들었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충현(50)씨가 홀로 일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다. 28년 경력을 가진 정비기술자이자 숙련공이었던 고인은 10년 가까이 발전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일해왔다. 태안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은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이자 전력설비 정비전문기업인 한전KPS에 정비업무를 외주화했고, 한전KPS는 이를 한국파워O&M이라는 회사에 재하청했다. 매년마다 새로운 협력업체와 계약을 갱신하며 발전소에서 일한 김충현씨는 2차 하청노동자였다.

2018년 12월에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씨가 스물넷의 나이로 죽었다. 김용균씨는 한국발전기술이라는 발전사 1차 협력업체에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홀로 야간에 위험작업을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김충현씨는 기계설비 정비업무를, 김용균씨는 석탄(연료)을 이송하고 재를 처리(환경설비)하는 공정을 각각 맡았다. 이들은 석탄화력발전업무의 주요 공정 양 축에서 일했다. 맡은 업무는 달랐지만 28년의 경력을 가진 숙련노동자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노동자도 발전비정규직으로 일한 탓에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정부가 만든 민영화, 재공영화도 정부가 나서야”

발전소에는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죽음의 외주화’가 벌어지고 있다. 2019년부터 2024년 7월까지 5개 발전사(동서발전·남동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남부발전)와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산재사망사고의 100%는 하청노동자였다. 부상 사고도 하청노동자가 발전사 정규직보다 5배 많았다.

김충현씨 동료들은 이 같은 중대재해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고용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고인은 생전 수시로 절차를 어긴 작업지시를 받았고, 사고가 난 범용선반은 안전장치조차 마련돼있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는 원청이 사고 책임을 덜기 위해 위험한 작업이나 공정을 협력업체에 넘기는 것을 포함해 현장 전반에서 작동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정비업무를 맡은 정철희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은 “현장에서 1차 하청인 한전KPS에 안전대책을 요구할 때 큰 예산이 수반되는 문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기본적으로 외주화된 업무는 위험한데, 계약한 공사가 아닌 현장의 일을 떠맡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정 분회장은 한전KPS를 1차 하청으로 둔 2차 하청업체 삼신 소속 노동자다. 발전소에서 일한 16년 동안 회사는 15번 바뀌었다. 1년 주기로 하청업체가 바뀌며 재계약 시기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정 분회장은 “2차 하청업체는 전문적인 기술이 있거나 지역에 기반을 둔 업체가 아니라 용역 입찰만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라 입찰에 탈락하면 떠나는 식”이라며 “업체 차원의 교육프로그램은 당연히 없고, 불안한 고용과 노동조건 때문에 사람은 계속 나가서 신규채용자만 작업에 투입되니 숙련자가 현장에 남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공영화’도 입길에 오른다. 2003년 민영화된 한전산업개발 노동자들은 재공영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2001년 한전에서 발전분야를 떼어내 발전 5사로 분할한 뒤 한전KPS가 담당하던 발전정비산업의 절반 이상을 민간정비업체에 맡겼다. 연료환경설비 운전산업은 한전 자회사였던 한전산업개발이 매출 대부분(2010년 기준 89%)을 차지했지만, 민영화와 외주화를 거치며 점유율이 다소 떨어졌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후 연료환경설비 운전산업을 공영화하기 위해 한전이 한전산업개발의 지분을 사들여 재공영화하는 방침이 추진됐지만, 지분 인수 협상은 5년 넘게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특별한 진척사항이 없다”며 “자유총연맹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표면적인 이유는 한전산업개발 대주주인 한국자유총연맹과 한전 간 가격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이지만, 사실상 정부도 손을 놨다는 게 노조 지적이다.

1998년 한전산업개발에 입사해 공기업과 민영화를 모두 경험한 송홍곤 한전산업개발노조 위원장은 “민영화 이후 회사는 공기업 때 만큼 안전이나 노무비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는 없다”며 “공기업 때 구축한 안전체계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사기업과 공기업의 문화는 엄연히 다르다. 노동조건이 나빠 퇴사율이 높다보니 미숙련자가 많고 인력부족 문제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송 위원장은 “정부가 개입해 민영화를 진행했으니 재공영화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발전소 폐쇄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생에너지 일감을 한전산업개발에 주고, 하청노동자를 한전산업개발이 고용한 뒤 재공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규직화·직고용, 안전시스템 구축 위한 선결조건”

7년 전 김용균씨가 숨진 뒤 꾸려진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발전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안전시스템 구축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다. 특조위 조사위원이었던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발전업무가 원·하청 구조로 분할되면서 안전시스템을 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구축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며 “‘하청노동자를 직고용하라, 정규직전환하라’는 권고는 그 자체로 목표라기보다는 통합적 안전시스템을 구축하는 첫 번째 조건이자 최소한의 토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조위 권고는 분명했다. 외주화된 업무는 재공영화하고, 하청노동자는 공기업이 직접고용하라는 것이다. 연료환경설비 운전노동자는 발전사가 직접고용하고, 경상정비(설비 결함시 유지·보수 업무)노동자는 한전KPS가 직고용하라고 제안했다.

특조위는 경쟁체제에 놓인 발전 5사도 통합할 것을 제시했다. 특조위는 “석탄화력발전 공정을 무리하게 분할하면서 공정 간 소통을 복잡하게 만들어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직접고용은 노동자 안전과 업무 효율성 차원에서 필수적”이라고 부연했다. 개별 업체에 외주화하기 위해 공정 흐름을 억지로 쪼개면서 공정과 노동의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연료환경 운전설비’ 분야에서만 특조위 권고를 수용했다. 연료환경 운전설비산업은 하나의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경상정비는 고용안정성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전산업개발 재공영화가 답보상태에 머물며 반쪽짜리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그 사이 경상정비 하청노동자는 한전KPS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특조위 권고안을 수용해 하청노동자 모두를 한전KPS에 직고용했더라면 소송은 없었을 것이다. 정철희 분회장은 “당초 현장에서 정규직화 이야기가 나오던 첫 번째 이유는 (고용안정이나 산업안전 문제보다) 우리와 한전KPS가 하는 일이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불법파견 의혹을 제기한 24명의 노동자는 한전KPS 정규직과 혼재근무하거나 원청의 직무교육·평가·직접적 업무지시가 일상적이었다고 증언했다.

“발전정비 경쟁·민영화 구조, 모든 발전노동자 위험”

발전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요구가 당사자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화와 더불어 발전산업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발전노동자의 요구나 다름없다. 발전공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중심인 전력연맹은 지난 4일 고 김충현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애도를 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전면 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구조적 원인”이라며 “이번 사고는 발전정비시장 민영화 정책으로 인한 과도한 경쟁체제 속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이제라도 특조위의 권고안에 따라 경상정비산업을 재공영화하라”고 강조했다. 전력연맹은 앞서 올해 5월 더불어민주당과 체결한 21대 대통령선거 정책협약에서도 발전정비 안전 강화 방안으로 “발전정비 안전강화를 위해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은 “근본적으로는 발전정비산업을 민영화하고 발전소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정부의 정책이 문제”라며 “재공영화하는 것이 (산업안전과 고용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남 사무처장은 “발전정비산업의 공공성이 훼손됨으로써 발전비정규직을 포함한 발전산업 노동자 모두가 공통적으로 (위험의 외주화 같은) 문제에 노출돼있는 것”이라며 “기획재정부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한 추가 정원을 인정하고, 사업 물량을 보장해 비정규직 정규직화·직접고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발전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따라붙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당위이기도 하다. 올해부터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가시화하며 발전비정규직의 불안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태안화력발전소 1호기는 올해 말 문을 닫는다. 당장 일터에서의 위험만큼이나 발전소 폐쇄로 인한 고용불안 우려도 크다. 정철희 분회장은 “2차 하청노동자는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발전소 폐쇄 뒤 계약을 안 해버리면 그만이다. 재배치 문제를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홍곤 위원장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지만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단 한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며 “‘너무 착한가’라는 자조적인 생각도 든다. 발전소 폐쇄가 다가오며 30~40대 청년노동자 퇴사율이 70%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안전과 고용보장을 위해서는 재공영화·정규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날 한시에 모든 발전소 하청노동자가 사직서를 써야만 깨달을까 싶다”며 ”그땐 나라가 블랙아웃(blackout·광역정전)에 빠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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