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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31 11:24
펌 한겨레> 일하며 느낀 수치심…무력감·분노 오가며 인간성 무너져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644  


▲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① 질식:회사와 고객 사이 숨이 막힌다



콜센터 직원의 ‘빨간불’
30분 쉬면 자리에 불 켜지고
매년 매겨지는 친절 등수
해고 압박에 우울증 시달려

AS기사의 ‘공황장애’
고객이 욕하고 때리면 참고
제품 불량도 무조건 내 탓
어느날 숨이 막혀서 기절했다


고객은 항상 옳습니다.” 어느 대형 서비스 사업장의 구호는 대부분 감정노동자의 노동을 규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고객에 대한 친절’은 서비스 업종의 핵심이지만, 회사가 줄세우기 경쟁과 수치심 주기로 친절을 강제하는 건 또다른 문제다. 일터에서 매일같이 받는 상처와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던 이들이 자신의 얘기를 꺼낼때,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지고 목소리는 떨렸다

회사의 ‘빨간 불’과 고객의 성적표 사이

한 물류회사 콜센터 직원 100여명은 매해 한국능률협회로부터 친절도 평가를 받는다. 친절평가에서 항상 10등 안에 들었다는 이 회사 4년차 콜센터 직원 정연희(가명·27)씨는 “그러나 친절하고 싶어도 친절하기 어렵다. 회사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서는 친절과 능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팀장은 팀원들의 1등부터 100등까지 전원의 순위가 매겨진 성적표를 가지고 직원들을 ‘관리’한다.

계량화는 매순간 이뤄진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이 회사도 휴식 1시간, 고객 상담 후처리 1시간을 포함해 하루 평균 9시간을 일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후처리 시간 30분 이상을 쓰면 자리에 ‘빨간 불’이 켜진다. 실적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등이다. “후처리 시간을 거의 쓰지 않아야 실적이 나와요. 화장실 가거나 컵 닦으러 가는 시간까지 측정되니 앉아서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 고객들은 흔히 확인하고 전화해달라지만 우린 그 말이 가장 두려워요. 고객에게 전화를 걸면 후처리로 간주되거든요.” 이 회사는 후처리 시간 사용 여부, 고객 친절도, 영업 실적 등을 종합해 직원을 평가하는데 여러달 점수가 낮다면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단다. “가슴에 무언가가 쌓이는데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라고도 하고, 허리디스크라고도 해서 이래저래 약만 먹어요. 어제는 고객과 싸우기 직전까지 갔어요. 이젠 저도 저를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울산시 한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10년째 출장 수리 기사로 일하는 김광수(가명·38)씨는 고객 집 앞에만 가면 가슴이 조여들고 숨이 막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2년 전부터 나타난 증상이다. 출장을 나서다 숨을 못 쉬며 길게는 10분까지 쓰러져 있기도 했다. 온갖 검사를 다 해보던 끝에 최근 신경정신과에서 공황장애(우발적 발작성 불안) 진단을 받았다. “제품이 원래 불량이어도 다 수리기사 책임이에요. 고객이 제품 불만을 제기해도 수리기사가 반성문을 쓰고 지적을 받아요.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고 술주정까지 받아줘야 하지만 해피콜 때문에 고객에게 대꾸도 제대로 못하는 일이 거듭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고객들이 무서워요.”

기술직이지만 고객들로부터 친절도를 평가받아야 하는 수리 기사들은 해피콜을 통해 부당한 요구에도 맞설 수 없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한 기사는 “로봇청소기에 개똥이 들어갔다고 치우러 오라는 고객 전화에 관리자에게 ‘꼭 가야할까요’라고 물었더니 ‘안가면 어쩔건데. 네가 우리 실적 말아먹을 일 있나’하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날 출장비도 받지 못하고 개똥을 치웠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노동조합이 <한겨레>에 보내온 여러개의 녹음 파일에는 기사들의 멱살을 잡거나 욕을 퍼붓고 심지어 차에 감금해 끌고 다니며 협박하는 고객들의 음성도 있다. 일부 ‘진상’ 고객의 사례일 수 있지만 문제는 이럴 때조차 기사들에게 방어권, 회피권이 없다는 점이다.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장은 “어떤 폭력을 당해도 고객을 고소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관리자가 막아선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 수치심은 어떤 방법으로든 완전히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체험이라고 한다. 김씨와 같은 센터에서 일하는 다른 직원도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다.


무력감과 분노 사이

서울시내 유명 한 호텔 면세점에서는 아침 조회마다 친절 교육 시간이 있다. 이곳 판매직원 김승희(가명·31)씨는 그 풍경을 전한다. “‘손님이 무릎꿇고 빌라고 하셔서 정말 무릎을 딱 꿇었더니 손님께선 지배인님이 무슨 죄가 있냐고 일으켜주셨습니다.’ 지배인이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요. 직원들은 속으로만 막 욕해요. 우리보고 그러라는 이야기잖아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삼성 에버랜드 노동조합 박원우 지회장은 “관리자들은 고객이 고객상담실에 가지 못하도록 무조건 막으라고 지시한다. 고객상담실에 접수되면 전 회사가 다 알게 된다. 그러다보니 고객이 아무리 부당한 말을 해도 무조건 빈다. 무릎꿇고 비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무릎꿇고 빌어 상황을 모면한 감정노동자의 마음 속에는 무슨 일이 생겨날까? 직군별로 감정노동자의 상담을 진행중인 마인드 프리즘 정혜신 대표는 “수치심은 어떤 폭력보다도 인간성을 파괴하고 허물어뜨린다”며 “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훼손당한 사람은 자살충동, 완전한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회사에서 감정노동자들에게 업무의 일부로 계속 수치심을 강요한다면 감정노동자들은 무력감과 통제할 수 없는 분노 사이를 오가게 된다. 그런 감정을 극단적으로 오가면서 사람은 무너진다. 우연히 만난 모르는 사람에게 감정을 폭발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콜센터 관행인 빨간불 통제방식은 인권 침해다. 우리나라처럼 서비스직 노동자를 주종관계로 여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감정노동자의 우울증, 공황장애 등은 모두 같은 기저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노동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연희씨에게 전화로 막말과 욕설을 쏟아부었던 고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할 말 없어요. 그 사람들은 어차피 몰라요. 대신 우리도 똑같이 점수를 매기고 싶어요. 1등부터 100등까지 고객 순위를 정해주고 싶어요.” 올 여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음성파일이 있다. “엘지유플러스입니다”라고 끈기있게 대응하는 직원에 귀가 잘 안들리는 할머니는 “불났어요”를 반복한다.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좋아했고 해당 직원은 친절의 표상이 됐다. 하지만 그 끈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남은주 기자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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