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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1-07 17:34
펌 한겨레> 치떨리는 경험 후 나도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2,470  

마음을 짓밟는 감정노동 ② 트라우마
먹고 살기 위해 매일 일터에서 ‘인격에 손찌검’ 당해
무릎 꿇으라는 고객…“처음으로 사람 죽이고 싶었다”

수없이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 치떨리는 일을 겪었지만, 감정노동자들은 대체로 한 사람만을 기억한다.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이 진행하는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정혜신의 공개상담실 자리에서 만난 서비스직 노동자들도 그랬다. 지난 8월부터 감정노동자 상담 과정을 동행취재해온 <한겨레>는 그중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안고 있는 서비스직 노동자 3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오지영(가명·29)씨는 잊지 못하는 ‘고객님’이 있다. 1년전 일이다. 그는 전화를 걸자마자 모 중견기업 회장의 가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물건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주문번호를 입력하려는데 수화기 너머로 대뜸 욕이 쏟아졌다. “지영아, 너 빨리 찾지 않으면 목을 따버린다. 지영아, 네 눈알로 당구를 치기 전에 빨리 찾아라….” 손이 떨려서 도저히 타자를 칠 수가 없었다. 20분 동안 쏟아지는 욕설을 멍하니 듣기만 했다.

그걸로 끝난게 아니었다. 하필 그가 주문한 물건이 통관보류중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 손님은 무작정 오지영씨만 찾았다. “지영아, 내가 너 때문에 잠 한숨 못잤다. 지영아, 너 왜 이렇게 무능하니?” 꼬박꼬박 자신의 이름을 짚으며 욕하고 질책하는 전화를 며칠동안 하루 한시간씩 받아야 했다. 물건을 받고 나자 그 손님은 그동안 자신이 전화한 내용이 담긴 음성 녹음 파일을 모두 지워줄 것을 요구했다.

트라우마는 폭력 앞에서 약자들이 겪는 고통이다. 문제는 가해자는 무사히 빠져나가고 피해자는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트라우마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재수 없어 ‘변태’ 고객을 만났다며 간단히 잊을 수 없는 이유다. 지영씨는 변했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얼마전 친구가 깜짝 놀라 물었다. “너 목소리가 왜 이래? 자동응답 전화기 같잖아.”



인천공항 판매점 계산대에서 일하는 김수정(가명·32)씨는 40대 여자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화가 나서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 판매직원들의 마음 속엔 경계경보가 울린다고 한다. 그 손님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판매 직원을 불렀다. “이것 펴 봐.” “별로네, 내려놔.” 보던 스카프를 팽개치기도 했다. 손님이 갑자기 계산대로 오는 바람에 수정씨는 미소지을 타이밍을 놓쳤다. “여기 직원들 표정이 하나같이 왜 이래?” “죄송합니다.” 아무리 머리를 조아려도 손님은 화를 풀지 않았다. 매니저를 불러오라고 했다. 손님은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한마디를 남기고 나갔다. “불쌍해서 봐준다. 네 인생도 참….” “그 말 한마디에 내 인생은 진짜로 무너졌다.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온 인생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듯 했다”고 수정씨는 말했다.

고객에게 정신적 상처를 당한 감정노동자들의 심리상태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와도 흡사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 때문에 갖는 감정적 부담을 스트레스라고 한다. 감정을 다치게 하는 폭력이나 학대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려 한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자꾸만 그때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수정씨는 여자 손님이 화를 내던 그 장면을 머릿 속으로 수백번 반복 재생했다. “내가 그런 경멸을 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는 증거를 스스로 계속 찾아내려고 하는 거에요. 내가 밝게 웃지 못했으니 손님이 그랬겠지, 내가 좋은 대학 나와서 번듯한 회사 다녔어야지. 나중엔 아버지 돌아가시고 생계를 나한테 미룬 엄마 원망까지 했고요. 내 인생, 나라는 사람이 싫어지더라고요.” 결국 병원을 찾아 우울증 진단을 받고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감정노동자들이 마인드프리즘에 보내온 편지에는 “언제부턴가 무례한 민원인들을 상대하려면 손이나 목소리가 떨리고 심하게 놀라는 증상이 생겼다”며 신체적 이상증상을 호소하는 공무원도, “친절해야 하고 절대 환자를 이기려 들면 안된다는 고객서비스센터 강사의 강의를 듣고만 있다. 속으론 내게 힘들게 한 사람들을 보면 안절부절 못하다가 때론 아무 이유없이 화가 나고 죽이고 싶은 열망이 생기기도 한다”고 고백한 병원 직원도 있었다.

고객센터 관리자로 일하는 박정연(가명·32)씨는 신입사원때 사소한 실수때문에 고객한테 고소를 당할 뻔 했다. 고객은 와서 무릎꿇고 사과하면 고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팀장과 부장이 직접 그를 데려가 사과하도록 했다. 무릎꿇기 전 고객이 마음을 풀었지만 친절과 환대로 가득찼던 정연씨의 세상은 그날 이후 무너졌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할 땐 진상고객을 욕하지만 회사를 벗어나면 약자들한테 소리지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마인드프리즘 정혜신 대표는 “공격성은 만성적 좌절이 일상화될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손발이 묶인채 고객들의 감정을 받아주어야 하는 감정 노동자들이 밖에 나가서 또 다시 공격성을 표출하게 된다”고 했다.

“정신적 상처가 안으로 파고 들면 마음을 상하게 하고, 밖으로 향하면 분노가 폭발”(책 <따귀맞은 영혼>)한다. 먹고 살기 위해 매일 따귀를 맞는 사람은 없다. 감정노동자의 정신적 외상을 좀체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이들은 일터에서 매일 ‘인격에 손찌검을 당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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