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청노동자 숨진 유죄 판결 42% ‘피해자 과실’ 참작 … 판결 관행 양형기준에 반영
홍준표 기자 입력 2026.10.27 06:30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8개월이 지났다. 78년 만의 형사사법체계 대전환으로 중대재해 수사도 변곡점을 맞았다. 지난 2일 검찰청이 폐지되면서 고용노동부가 수사한 사건의 기소 여부는 이제 공소청이 가린다. 법원에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달 중대재해처벌법 첫 양형기준안을 내놓았다. <매일노동뉴스>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손솔 진보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235건의 공소장과 직접 입수한 1심 판결 167건을 분석했다. 공소장과 판결문 전수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중대재해 처벌의 현주소를 진단한다.<편집자>
“사망사고 발생에는 피해자의 ‘위험한 작업방식’ 선택이 큰 영향을 미쳤다. 회사에서는 피해자에게 안전모를 지급했고, 전도 방지 용도로 충분하지는 않으나 코일에 대한 바닥 작업시 나무 고임목을 사용하도록 했다. (중략) 그런데 피해자는 안전모를 쓰지 않고, 3개의 코일 모두에 제대로 된 전도방지조치 없이 코일들 사이에 들어가 위험한 작업을 했고, 이러한 작업 방식의 선택이 사고로 이어졌다.”
광주지법 형사5단독(지혜선 판사)이 지난해 1월 냉장고 부품 제조업체 ‘디케이’ 대표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참작한 ‘유리한 정상’이다. 2022년 11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디케이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강판코일 묶음을 나누다 넘어진 2.3톤짜리 코일에 깔려 숨졌다. 회사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밤에는 작업지휘자 없이 혼자 일하게 했다. 넉 달 전 안전점검에서 코일이 넘어질 위험이 지적됐는데도 대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법원은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징역형 하한(1년)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다. 피해자의 위험한 작업방식이 사고로 이어졌다는 판단에서다. 숙련된 노동자가 업무 편의와 단순화를 위해 안전수칙을 무시한 채 작업하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회사가 노동자의 작업 방식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몇차례 주의만 준 채 이를 방치했던 것이 사고 발생에 상당한 원인이 됐다”고 판시했다. 집행유예형은 2심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법인 벌금도 법정형 상한(50억원)의 0.2%인 1천만원에 그쳤다.
“고리 풀 수밖에 없었다”면서 ‘피해자 잘못’ 참작
26일 <매일노동뉴스>가 법 시행 뒤 지난 1일까지 선고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1심 판결 167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유죄가 선고된 151건 가운데 45건(30%)에서 ‘노동자 과실’을 형량에 반영했다. 특히 하청노동자가 숨진 유죄 판결에서는 이 비율이 42%(24건)로 올랐다. 원청 사건(83건 중 16건·19%)의 2배가 넘는다. 노동자의 과실을 인정한 판결 중에는 “피해자에게도 사고 발생 또는 피해 확대에 어느 정도의 과실이 있다”와 같이 한두 줄로 양형을 참작한 판결이 대부분이었다.
법원은 경영책임자의 안전조치의무를 지적하면서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경남 창원의 건설업체인 ‘신태양건설’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2022년 11월 경남 창원의 신축공사 현장 21층 작업발판에서 하청노동자가 떨어져 숨진 해당 사건에서 1심은 “안전고리를 거는 강관 구조 탓에 노동자들이 안전 고리를 수시로 풀었다가 체결하면서 이동해야 했다”며 “고리를 푼 채 움직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했다. 원청이 개구부에 안전난간과 안전대 부착설비도 설치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안전 고리를 풀었던 피해자의 잘못도 사고 발생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며 원청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SPC그룹 계열사 사고도 마찬가지다. 2022년 10월 SPC 계열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식품혼합기에 끼여 숨진 사건에서 1심은 “노동자들이 부주의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며 기계의 위험을 줄이는 조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안전관리자들이 가동 중인 혼합기에 손을 넣는 작업 관행을 알고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양형에서는 가동 중인 혼합기에 팔을 깊숙이 넣은 피해자의 과실을 반영했다. 당시 SPL 대표는 올해 6월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과실 참작, 양형기준의 특별감경인자
그러나 피해자 과실보다 사업주의 의무를 강조한 판결도 있다. 고소작업대에서 노동자가 떨어져 숨진 삼정엔지니어링 사건 1심은 피해자가 전날 과음했다는 변호인 주장을 두고 “음주 여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과실이 있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업주에게 엄격한 안전조치의무를 지우고 있어 (피해자 과실은) 제한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숨진 노동자에게 일부 사고의 책임이 있더라도 회사가 이를 관리할 의무가 있었다는 취지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취지의 판결 관행은 그대로 양형기준에도 반영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달 21일 심의한 양형기준 수정안은 ‘피해자 행동’을 특별감경인자에 포함시켰다. 전문위원 12명 가운데 9명이 동의했다. 피해자가 단순히 불편하다는 이유로 필수 안전장치를 끄거나 안전고리를 풀고 작업하는 등 자기안전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경우에 해당하면 형량을 감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위원 3명은 “중대재해의 원인은 일하는 사람의 실수가 아닌 기업 안전경영의 문제”라는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인 벌금, 상한의 고작 1.4% “재발 방지가 우선”
중대재해에 관한 사법부의 ‘관대한 인식’은 경영책임자의 양형에 그치지 않는다. 법인 벌금형도 법이 정한 벌금 상한(50억원)의 1.4%에 불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유죄를 받은 법인 142곳의 벌금은 평균 1억277만원(중앙값 7천만원)으로 파악됐다. 벌금 액수로 보면 △5천만원(30곳) △1억원(26곳) △8천만원(18곳) △3천만원(18곳) △7천만원(16곳) 구간에 108곳이 몰렸다. 5억원 이상을 받은 곳은 삼강에스앤씨·SPL(각 20억원), 아리셀(8억원), 일광폴리머(5억원) 등 4곳뿐이다. 이마저도 벌금 상한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법원은 회사 규모로 벌금액을 판단하지도 않았다.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8곳의 중앙값은 1억원이었지만, 상시근로자 2천439명인 아파트 관리업체 광인산업의 경우 법인은 벌금 5천만원을 받았다. 벌금이 100만원에 그친 사건도 나왔다. 소나무재선충 방제 현장에서 벌목 노동자가 숨진 ‘해암산업’ 법인은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합의금도 분할 지급할 정도로 영세한 업체”라고 판단했다. 최종형이 벌금형인 경영책임자(14명)도 벌금 500만~3천만원으로 개인 벌금 상한(10억원)의 3%도 채 되지 않았다.
현존 최고 벌금은 20억원, 양형기준 논의 제외
특히 상급심에서 벌금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유죄 선고 142곳 가운데 4곳은 법원이 벌금 액수를 깎았다. 경기 포천의 한 파이프 제조업체에서 크레인으로 옮기던 강판코일이 떨어져 노동자가 숨진 사건에서 2심은 지난달 17일 법인 벌금을 5천만원에서 절반인 2천500만원으로 줄였다. 재판부는 “중한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보다는 회사의 역량을 재발 방지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법원은 안전관리 기술지도에서 크레인 작업의 낙하 위험 대책이 반복해 언급됐는데도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최고 벌금액은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숨진 선박 건조업체 ‘삼강에스앤씨’와 SPL이 2심에서 선고받은 벌금 20억원이다. 삼강에스앤씨 사건에서 1심은 “회사로부터 근로자들의 안전보장보다 시간·비용의 절약을 우선하며 얻어온 수익을 박탈하고 그런 태도를 버리게 할 수준의 벌을 주지 않으면 또 다른 산업재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며 법인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사이 이 회사 사업장에서 또 노동자가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경제적 제재 성격으로 마련된 법인 벌금형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는 부족한 상황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달 공개한 양형기준안에 법인 벌금 기준은 없다. 양벌규정에 대한 양형기준은 선례가 없고, 매출 규모에 따른 차등은 신중한 논의가 먼저라는 이유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양형위원회는 내년 1~2월 공청회를 거쳐 3월에 기준을 최종 의결할 계획이다.
사고에서 1심까지 2년 넘게, 4년 만에 기소되기도
미약한 처벌 인식은 기소·수사 기간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재해 발생일이 나오지 않는 사건을 제외한 공소장 234건(올해 8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사고에서 기소까지 중앙값 기준 1년6개월이 걸렸다. 사고일부터 2년 넘어 기소된 사건도 69건(30%)이나 된다. 특히 3년을 넘긴 20건은 모두 지난해 이후 기소됐다.
심지어 기소까지 4년을 넘긴 사건도 있다. 2022년 7월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 정수사업소 지하 저류조를 청소하던 하청노동자가 적정 기준의 100배를 넘긴 황화수소에 중독돼 숨진 사건이다. 검찰(현 공소청)이 경영책임자로 판단한 상수도사업본부장은 사고 약 4년(1천468일) 만인 올해 7월 재판에 넘겨졌다. 반면 여론의 주목을 받은 사건의 기소 기간은 매우 빨랐다. 6명이 숨진 부산 기장 반얀트리 신축공사 현장 화재는 74일, 23명이 숨진 아리셀 화재는 92일 만에 기소됐다.
수사는 적체된 상태다. 노동부가 손솔 진보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건 532건 가운데 413건(78%)은 지난 6월 말까지 수사 중으로 나타났다. 법 시행 뒤 수사에 착수한 1천836건 전체로 넓혀도 55%는 종결되지 않았다. 검찰청마다 편차도 크다. 사고에서 기소까지 인천지검(752일)은 울산지검(399일)보다 1년 가까이 길었다. 춘천지검(700일)·대전지검(697일)도 창원지검(435일)보다 9개월가량 길었다
기소 이후 판결 선고까지의 기간은 더 걸렸다. 1심이 선고된 167건은 기소에서 1심까지 중앙값 209일, 사고에서 1심까지 759일(2년1개월)이 소요됐다. 사고 뒤 3년을 넘겨 1심이 선고된 사건이 36건, 4년을 넘긴 사건도 9건이다. 2심 판결까지 나온 41건은 사고부터 2심까지 2년10개월이 걸렸다. 사고에서 판결까지 유족은 2년을 넘게 기다려야 했던 셈이다.
‘지리멸렬’한 기소·판결 기간과 더불어 피해자 과실을 양형에 반영한 판결 관행에 대해 ‘사문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조재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조안전 대표)는 “법원은 피해자의 과실을 감형 사유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법부가 중대재해 피해자 유족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는 행위”라며 “사법부의 중대재해 감수성 부족은 중대재해처벌법 신설 등 안전보건을 강화하는 국회 입법을 법해석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