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관련소식

Home|최근소식|비정규직 관련소식

 
 
작성일 : 26-10-29 10:37
[오피니언]얼마나 많은 산재가 감춰지게 될까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7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김혜진 입력 2026.10.29 06:30

2020년 10월, 김범석 쿠팡 의장은 “그가 열심히 일한 기록을 남기지 마라”고 지시했다. 쿠팡에서 일하던 28세 청년, 고 장덕준님이 과로로 쓰러져 사망한 이후였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10개월 동안 쿠팡의 산재은폐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범석 의장의 이 지시는 ‘부적절한 행위’였을 뿐, 법 위반은 아니라고 했다. 산업안전보법 57조는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그 ‘발생사실’을 은폐해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노동부는 쿠팡이 산재 발생사실을 보고했고 재해조사표도 제출했으니 ‘발생 사실’을 은폐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노동부의 눈에 산재의 원인을 감추거나 산재의 증거를 조작하는 일은 ‘산재은폐’가 아니다.

‘산재은폐’로 처벌하기 어려웠다면 ‘원인조사 방해’로 김범석 의장을 처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56조5항은 현장 훼손과 원인조사 방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부의 논리는 ‘자신들이 원인조사를 하지 않았으니 원인조사 방해도 아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쿠팡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노동부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알 수 있다. ‘원인조사 방해’로 처벌하기도 어렵다면 경찰과 공조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도 있었다. 노동부는 그것도 하지 않았다. 김범석에 대한 조사를 ‘산재은폐’라는 단어에 가둬두고 ‘산재은폐’를 아주 좁게 해석해 면죄부만 주었다.

노동부는 쿠팡 블랙리스트도 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2020년 11월 쿠팡은 노동부의 채용절차 점검을 앞두고,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블랙리스트)’가 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그 사실이 2026년에 폭로됐다. 근로기준법 40조에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그런데 노동부는 이 단순한 법조문을 ‘다른 회사’의 취업을 방해하려고 ‘외부 공유’를 해야 근로기준법 40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산재은폐는 법조문을 그대로 적용해 좁게 해석하더니 이제는 법조문에 마음대로 단서를 단다.

많이 알려진 블랙리스트는 2024년 폭로된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1만6천450명 블랙리스트다. 이 사건은 CFS와 쿠팡이 자료를 공유했고, 노조 간부와 기자들까지 리스트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무죄라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노동부는 이 블랙리스트를 2년 동안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26년에 만만한 블랙리스트 사건이 생기니 얼른 ‘법 위반이 아니다’고 면죄부를 준 것 아닌가. 노동부의 주장대로 블랙리스트를 ‘다른 회사로의 취업방해’와 ‘외부 공유’로 해석해 버리면, 플랫폼 기업들이 마음대로 블랙리스트로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해도 처벌받지 않는 무서운 상황이 된다.

노동부는 쿠팡TF를 꾸려서 10개월이나 조사를 했다. 그래놓고 ‘공소시효가 지났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됐다’ ‘쿠팡에서 자료를 내놓지 않는다’ ‘산재 피해자들이 증언하기를 두려워한다’고 핑계를 댔다. 미국을 통해 압력을 가하고 돈으로 대관팀을 운영하는 쿠팡을 조사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러면 차라리 ‘우리가 부족해서 밝힐 수 없었다’고 말하면 된다. 게다가 고 장덕준님의 산재은폐에 대구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들이 개입된 것도 내부제보자에 의해 확인된 상황이니, 노동부의 조사를 애초에 신뢰하기 어렵기는 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쿠팡의 산재은폐와 블랙리스트가 법 위반이 아니라고 선언해 버렸다.

노동부의 이 선언이 미칠 파괴적 영향이 너무 두렵다. 노동부는 쿠팡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다른 기업들의 산재은폐와 블랙리스트 활용의 길을 열어버렸다. 산재가 많이 줄어서 대통령이 노동부를 칭찬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두렵다. 산재 신청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이유가 되고, 쿠팡의 산재은폐 매뉴얼이 여전히 작동하는 현실에서, 산재라고 불리지도 못한 산재는 얼마나 많을까. 노동부의 이 발표로 이후 얼마나 많은 산재가 감춰지게 될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오늘의 방문자 1 | 총 방문자 38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