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세계노동절대회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세계노동절대회는 추모하는 자리이자 반성하는 자리였다.
평소 세상을 바꾸자고 목소리 높였던 조직 노동자들은 아이들을 지켜 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눈물 흘렸다. 세월호 침몰로 바닷속으로 사라진 안산 단원고 학생들, 산재사고·정리해고 등 국가·사회의 잘못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넋을 애도했다.
피켓과 현수막을 비롯해 행사장의 모든 선전물은 세월호 참사 추모리본과 같은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꾸며졌다. 참가자들은 가슴이나 어깨에 노란색 추모리본을 패용했다. “깊은 슬픔을 넘어 분노하고 행동하자”는 구호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날 대회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절’이라는 행사 기조와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민주노총은 각 조직의 깃발 입장, 내빈소개 등 관행처럼 해 왔던 일부 프로그램을 없앴다.
대신 세월호 참사 관련 활동가와 산재사망자 유족처럼 정부·기업의 잘못으로 희생된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이들의 발언으로 행사의 대부분을 채웠다.
세월호 참사 안산지역 시민사회대책위원회에서 일하는 위성태 민주노총 안산지부 지도위원은 “지금 안산은 시간이 멈췄고 거대한 분향소가 됐다. 모든 시민이 상주가 돼 죄인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위 지도위원은 “곧 지방선거와 월드컵·임단투가 시작된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를 잊어서는 안 되며,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탐욕스런 자본에 재갈을 물리고 박근혜 정부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함께 촛불을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전교조 조합원인 김진철씨(구로중 해직교사)는 권혁소 시인(강원도 고성중 교사)이 만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시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를 낭독하며 울먹였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부친 황상기씨도 무대에 올랐다. 황씨는 “세월호와 삼성은 닮은게 많다”며 “삼성은 유해물질에 대한 교육 없이 노동자들에게 일만 시켰고, 세월호는 아이들에게 사고시 대피요령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시설에서 혼자 있다가 화재를 피하지 못해 지난달 17일 숨진 고 송국현(3급 장애인)씨의 죽음에 대한 분노도 표출됐다. 최진영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송국현씨에게 활동보조 지원이 있었더라면 불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장애등급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를 지원하지 않은 정부의 장애등급제가 그를 죽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신승철 위원장은 대회사 도중 목이 메어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도망간 세월호 선장의 모습이, 총파업 투쟁을 보여 주지 않은 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뼛속 깊이 스며듭니다. 사회의 변화를 주장한 우리가 어느새 모든 민중의 죽음에 둔감해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행사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서울역광장을 출발해 을지로·명동을 거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까지 행진했다. “침몰하는 대한민국, 박근혜가 책임져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앞세웠다.
행진을 지켜보던 남대문시장 상인 박아무개(52)씨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세월호 사건에 국가와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저들의 주장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분향소에 도착한 대회 참가자들은 숙연하게 머리를 숙이고 묵념했다. 먼저 줄을 서 있던 2천여명의 시민들 뒤에 서서 분향 차례를 기다렸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노란리본이 분향소 근처 나무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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