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인 활동 자료가 있다는 이유로 뮤지컬 앙상블 배우의 근로자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판결
판결 요지
원고들이 예술인 고용보험에 가입한 이력이 있다거나 예술인활동증명을 신청했다는 사실은 이 부분 근로자성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또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피고,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가 공동 발간한 문화예술용역 운용지침서는 근로자인 예술인과 근로자가 아닌 예술인이 모두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서술되어 있고, 위 지침서에 의하면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의 범위에서 근로계약이 배제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서의 내용이 공연예술출연 표준계약서의 내용 중 일부를 차용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여 예술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이 사건 처분의 근거가 된 근로기준법 및 임금채권보장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바, 그 목적이나 보호법익 역시 다르다. 따라서 피고가 주장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예술인 복지법상의 권리구제 제도만으로 근로자와 예술인의 지위를 동시에 갖는 원고들에 대한 임금채권보장법상 구제를 인정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1. 사실관계
본 사건의 원고들은 2020년 1월23일부터 2020년 2월27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에 출연했으나, 임금을 받지 못한 앙상블 배우들이다. 앙상블 배우는 뮤지컬에서 주연과 조연 등을 제외한 여러 단역들을 모두 소화하는 배우를 뜻한다. 이들은 통상 주인공이 노래를 부를 때 합창을 하거나 뒤에서 군무를 추고, 때로는 주변 인물로 등장한다.
이 사건의 원고들은 2021년 4월14일 제작사에 대해 미지급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지급명령을 신청했고, 2021년 5월17일 지급명령이 발령돼 2021년 7월30일 확정됐다.
2022년 5월26일 본 사건의 피고 근로복지공단(이하 피고)에 임금채권보장법 7조에 따른 대지급금의 지급을 요구했으나, 피고는 2022년 8월2일 원고들에 대해 “간이대지급금 지급 대상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각 부지급 처분을 했다.
2. 판결의 내용
가. 관련법리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 도급계약 또는 위임계약인지보다 근로제공 관계의 실질이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것인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서 종속적인 관계인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 참조)”고 보고 있다.
나. 원고들의 근로자성에 대한 판단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징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해 이 사건 법원은 아래의 이유를 들어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①이 사건 공연의 수입원에 대해서는 이 사건 회사가 독점적 권리를 보유했고, 이 사건 회사가 공연 및 연습에 필요한 의상·분장·도구·식사·상해보험 등을 제공해 원고들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지 않았다.
②원고들이 제3자를 고용해 노무를 대행케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③비록 원고들의 출연료는 근로시간에 비례한 것이 아니라 공연 단위로 정해졌으나, 이는 공연 출연 횟수와 연습 기간에 따라 대략의 노무제공 시간과 강도가 예상이 가능한 공연 출연 계약의 특성에 따른 것으로 보여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출연료는 노무 제공 그 자체에 대한 대상적 성격으로 보인다.
④이 사건 원고들의 배역과 그 안무, 노래 및 연기 등 업무내용은 이 사건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음악감독, 안무감독 등에 의해 정해져 원고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여됐고, 감독들은 이 사건 공연 준비를 위한 연습 과정에서부터 실제 공연에 이르기까지 원고들을 포함한 앙상블 배우들의 춤과 노래에 관해 세세한 지휘·감독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⑤이 사건 공연 일정 및 그 준비를 위한 연습 일정과 장소가 사전에 그 세부 내용까지 정해져 앙상블 배우들에게 통보돼 원고들의 업무수행 장소, 집합 및 퇴근시간을 포함한 업무 시간이 이 사건 회사 측에 의해 지정됐고, 원고들은 이에 구속을 받았다.
⑦이 사건 회사는 명시적으로 원고들에게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무대 공연의 출연을 금지했으며, 이 사건 공연과 그 연습 스케쥴 등을 고려해 보면 주연 배우들이 아닌 원고들이 이 사건 공연 및 연습 기간 동안 다른 공연에 출연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보여 이 사건 계약 기간 동안 원고들의 이 사건 회사에 대한 노무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 또한 인정된다.
다. 피고의 추가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는 원고들이 다른 활동에서 예술인으로서 예술인 고용보험에 가입한 이력이 확인되고, 예술인복지법에 따른 예술인활동증명신청을 한 적이 있으며, 공연예술출연표준계약서를 일부 수정한 계약을 체결했으므로 근로자가 아니라 문화예술용역을 하는 예술인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피고가 내세운 추가적인 사유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①피고가 주장하는 원고들의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내역은 이 사건 공연과는 무관하고, 2020년 6월9일 고용보험법 개정으로 업주에 대해 예술인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신고의무가 부과된 이후의 것으로 사업자의 규정 준수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일 뿐이다.
②예술인복지법 3조의2에 따른 예술활동증명은 근로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신청할 수 있으므로 원고들이 근로자인 예술인인지 여부와 관계없다.
③한국예술인복지재단등이 발간한 문화예술용역 운용지침서에 의하면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의 범위에서 근로계약이 배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서의 내용이 공연예술출연 표준계약서의 내용 중 일부를 차용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④예술인권리보장법과 예술인복지법상의 제도들은 임금채권보장법상 임금대지급제도와 동일한 것이거나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게다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 예술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이 사건 처분의 근거가 된 근로기준법 및 임금채권보장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바, 그 목적이나 보호법익 역시 다르다.
3. 판례평석
이 판결 이전에도 근로기준법위반 형사 사건에서 앙상블 배우가 근로자라는 전제 하에 뮤지컬 제작사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이 인정되는 사건들이 있었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14. 12. 2. 선고 2014나20859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11. 1.선고 2013고정9 사건). 다만 이 판결은 앙상블 배우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쟁점으로 해 앙상블 배우들이 근로기준법상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이 판결은, 앙상블 배우라는 직군을 넘어 피고 근로복지공단이 예술인권리보장법과 예술인 복지법상의 예술인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한 주장들을 모두 배척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판결에서 명시했듯이 예술인복지법상의 예술인활동증명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도 신청할 수 있고,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의 범위에는 근로계약도 포함된다. 또한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 보장을 위해 제정된 예술인권리보장법과 예술인복지법의 존재가 예술인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근로기준법은 명백히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법원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제공 관계의 실질이 근로제공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판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용역계약 체결 여부 또는 예술인복지법 적용 여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와는 관계가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판결의 결론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피고 공단이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그러나 예술과 노동은 상호배타적이라는 전제에 서 있는 공단의 주장은 노동 법리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공단의 상고가 상고기각이라는 당연한 결과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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