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22 08:19
중대재해 원청 ‘의무 이행’ 이유로 무죄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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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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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중견건설사 삼화건설 대표·현장소장 무죄 … 법원 ‘하청’을 사업주로 판단해 협소 해석[2023고단1699]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청의 사업주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다섯 번째 무죄다. 기존 무죄 사건은 법적용을 위한 공사금액 기준에 미달하고 사고 예견가능성이 없었다고 판단돼 혐의를 벗었지만, 원청 사업주가 의무를 이행했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은 처음이다. 법원은 원청 사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하청업체 대표에게는 유죄를 선고했다.
토사 매몰 하청노동자 사망, 붕괴 방지조치 없어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3단독(부장판사 지창구)은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전북 전주시의 중견건설사 ‘삼화건설’의 윤장환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삼화건설 법인에는 벌금 400만원이 선고됐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된 사고 당시 안전관리보건 관리책임자를 맡았던 삼화건설 현장소장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히려 이번 사고와 무관하게 ‘밀폐공간의 공기를 환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고 이후 현장소장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청 현장소장(사내이사)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유일하게 ‘징역형(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하청 법인은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삼화건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A(사망 당시 69세)씨는 2022년 10월17일 전북 군산시 금광동의 한 아파트 근처 하수관로 매립공사 현장에서 하수관(길이 6미터·직경 20센티미터)을 설치하던 중 붕괴된 토사에 매몰돼 흉복부 다발성 손상으로 숨졌다. 당시 공사현장은 왕복 2차로 도로의 중앙부에 있고, 터파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토사 붕괴 위험성이 있었다.
하지만 원청은 지반 붕괴를 방지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사시방서에는 ‘흙막이 지보공(흙막이 공사를 지지하는 부속물)’을 시공할 때 지보공을 뽑기 전에 흙을 되메워야 한다고 적혔지만, 공사 편의를 위해 지보공을 뽑은 후 되메움을 했다. 굴착 장소에 대한 출입금지 조치도 없었다. A씨가 공구를 챙기러 굴착 장소에 내려갔다가 토사에 깔렸다. 당시 현장소장은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안전대도 설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굴착 현장에 방호장치도 없었다.
법원 “위험성평가 절차 마련해 실시” 의무 이행
재판에서는 윤장환 대표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여부를 두고 공방이 일었다. 검찰은 윤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 등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2023년 11월 검찰이 기소한 후 다섯 번 재판이 열렸고, 법원은 세 차례나 선고기일을 연기한 후 원청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윤 대표가 ‘위험성평가’ 절차를 마련해 실시하고 보고받았다는 점이 무죄의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지 부장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한 데 대한 별도의 처벌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고 판시했다.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데서 나아가 조치의무 위반과 중대재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논리다. 지 부장판사는 “이 사건 사고는 되메우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보공을 철거하고 근로자 출입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근로자 등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소장 역시 잘못된 방식의 작업을 지시하지 않았고 위험성평가를 실시해 혐의가 없다고 봤다.
특히 도급인(원청)의 범위를 좁게 해석했다. 지 부장판사는 “단지 도급인 사업장에서 위험성이 있는 작업이 필요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삼화건설이 하청 S사에 공사를 하도급했고, 사고 당시 하청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었으므로, 작업을 지휘하는 ‘사업주’는 하청이고, 삼화건설 현장소장이 안전조치의무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법률 취지 몰각, 위험성평가만 하면 면책?”
법조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취지를 몰각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한다. 조재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조안전 대표)는 “옛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를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제한해 해석하게 만든 대법원 판결을 원용해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에서 인정하는 것을 넘어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에까지 확대 인정하는 논리를 거리낌 없이 제시했다”며 “이는 도급인의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의 취지와 이익 책임 원칙을 토대로 한 중대재해처법 제정 취지를 깡그리 무시한 독자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도 “실무자들이 제대로 작업하도록 하는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없어 작업자들이 임의로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인데, 판결대로라면 도급인은 위험성평가를 하기만 하면 면책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재판부는 공사시방서에 문제가 없고, 위험성평가도 제대로 됐다면서 정작 이지보공 제거 순서가 달라진 것을 도급인쪽에서 몰랐다고 한다”며 “이 정도면 원청에서 작업에 관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 맞는다”고 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현재까지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5건이다. 지디종합건설(2024년 10월16일 선고)을 시작으로, 평화오일씰공업(2024년 12월19일 선고)·한화오션(2025년 2월19일 선고)·SK멀티유틸리티(2025년 3월6일 선고)의 경영책임자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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