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6-10-15 17:41
|
[판례리뷰]산재 너머의 책임 : 학교급식실 폐암 첫 손해배상 판결
|
|
|
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37
|
곽예람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9. 8. 선고 2025가단64626 판결
곽예람 입력 2026.10.14 06:30
Ⅰ. 대상판결 개요 및 문제 제기
학교급식실 현장은 하루 수백 명분의 볶음·튀김·구이 요리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들어 내야 하는 공간이다. 그 열기와 연기 속에서 세월을 보낸 조리노동자들이 잇따라 폐암 진단을 받았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산재보상만으로 모든 손실이 보전됐다고 볼 수 없고, 무엇보다 ‘누가 이 위험을 방치했는지’ 책임 소재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상판결은 그에 대한 사법부의 응답이다. 법원은 사용자인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조리흄의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학교급식실을 오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의 사각지대에 둔 국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의 의의와 한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Ⅱ. 사건 경과와 당사자 주장
원고들은 광주·전남·부산·경북 지역 초중고교 급식실에서 짧게는 12년, 길게는 20년 넘게 조리 업무를 해 온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2015년부터 2023년 사이 폐암 진단을 받아 수술과 재발, 추적 관찰을 이어가고 있으며, 2022~2024년 업무상질병 판정을 받았다. 원고들은 2025년 1월 사업주인 각 지자체(교육감이 대표, 광주·전남은 소송 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수계)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산재보상으로 보전되지 않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공동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지급을 청구했다.
원고들은 지자체가 작업자 머리 위에 후드를 설치해 조리흄이 작업자의 호흡영역을 먼저 거친 뒤에야 배출되는 구조를 방치했고, 조리흄을 막을 보호구와 안전보건교육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과도한 식수인원 배치와 튀김·볶음 등 조리흄이 과다하게 발생할 우려가 있는 식단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2020년 전까지 학교급식실을 ‘교육서비스업’으로 묶어 산업안전보건법 주요 규정의 적용에서 배제하고, 조리흄을 작업환경측정·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에서 누락했으며,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에 급식실 환기 관련 기준을 두지 않은 행정입법 부작위의 책임을 물었다.
이에 대해 피고 지자체들은 관련 법령과 교육부 지침을 준수했고, 조리흄의 폐암 유발성이 의학적으로 확립되지 않아 손해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자체 일부는 2017년 이후의 교육·컨설팅·건강검진 등을 내세웠고, 진단일로부터 3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거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해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는 과실상계의 항변을 했다. 대한민국은 위임받은 사항을 이미 입법했으므로 행정입법 부작위가 아니고, 조리흄의 발암성도 검증되지 않았다고 다퉜다.
Ⅲ. 대상판결의 요지
1. 지자체의 보호의무 위반 인정
법원은 사용자가 근로계약에 수반하는 신의칙상 부수의무로서 피용자의 생명·신체·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지고, 그 위반 책임은 업무관련성과 예측가능성이 있을 때 성립한다는 법리(대법원 2001. 7. 27. 선고 99다56734 판결)를 전제로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먼저 국제암연구소(이하 IARC)가 2010년 고온 튀김 배출물을 인체 발암 추정물질(Group 2A)로 분류했고, 대만은 2006년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해 2014년 요리사의 폐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했으며, 국내에서도 2010년 학술지에 요리기름이 여성 비흡연 폐암의 발암인자로 거론됐던 점에 비춰볼 때, 지자체가 적어도 2010년경에는 조리흄의 위험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아 예견가능성을 인정했다.
또한 지자체가 발산원을 제어할 수 있는 후드 대신 캐노피 후드 등 배기량과 풍속이 부족한 환기설비, 공공기관 식당의 두 배가 넘는 1명당 식수인원, 튀김 위주 식단, 위험성 교육과 호흡보호구의 부재 등에 비춰 지자체가 당시 법령이나 지침상 의무를 모두 이행했더라도, 사용자로서 인적·물적 환경을 정비할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2. 소멸시효·과실상계 항변 배척
법원은 소멸시효 기산점을 진단일이 아니라 업무상질병 판정일이라고 보아 시효 항변을 배척했다. 과실상계 주장도 폐암의 주된 원인이 환기설비 미비에 있고, 지자체가 위험을 교육한 적도, 침방울 차단용이 아닌 조리흄 차단용 마스크를 지급한 적도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3.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기각
반면 법원은 국회가 급식실을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범위에 포함하거나 조리흄을 유해인자로 지정하도록 특정해 위임한 바 없고, 시행령 개정에는 연구 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조리흄에는 공인된 측정방법·노출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의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Ⅳ. 대상판결의 의의 및 한계
1. 사용자 책임의 명확화
대상판결은 사용자의 예견가능성을 국내 법령에 유해인자로 등재됐는지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축적된 과학적 지식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행정주체이기도 한 지자체가 조금만 알아보려 했다면 위험과 대책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는 판단은, 규제 목록 밖 복합 유해인자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위험을 파악하고 대비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또 법령과 지침 준수만으로 보호의무가 이행된 것은 아니라고 보아,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계법령이 최저기준일 뿐임을 확인했다. 더불어 국가가 만든 규율의 공백이 곧 사용자의 면책사유가 될 수 없고, 뒤늦은 제도 개선 노력이 이미 십수년간 누적된 위험 노출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과실상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함으로써 “마스크를 스스로 챙기지 않은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위험의 개인화 시도를 거부했다. 위험을 알리지도, 적절한 보호구를 지급하지도 않은 사용자가 위험을 피하지 못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는 것은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의 본질을 뒤집는 것이다. 법원은 이러한 시도를 배척하고 폐암의 원인이 사용자가 통제하는 작업환경에 있음을 확인했다.
2.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기각의 아쉬움
그럼에도 국가 책임이 인정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대상 범위에 대한 행정입법과 관련된 문제에서, 행정청이 위임받은 사항을 전혀 입법하지 않은 경우뿐 아니라 불충분하게 규정한 경우에도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으로서 위법하다고 하면서,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정한 시행령을 14년 넘게 개정하지 않은 국가에 위자료 지급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2다28905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대법원은 위 판결을 통해 행정입법재량에는 기본권을 단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사건의 구조도 다르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 3조는 적용 제외 사업을 시행령에 위임했고, 국가는 그 위임에 따라 급식실을 ‘교육서비스업’에 포함시켜 산업안전보건법 핵심 규정의 적용을 배제했다. 2003년 전면 급식 시행 이후 조리노동이 급증했고 2010년 IARC 분류로 위험이 알려졌는데도, 국가는 2020년 1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시행 때까지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특정한 위임이 없다’는 판단은 위임범위 안의 불충분한 규정도 위법할 수 있다는 전원합의체 법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또한 ‘검토에 시간이 걸린다’거나 ‘측정·노출기준이 없다’는 사정은 바로 국가가 채웠어야 할 제도적 공백임에도, 이를 다시 면책 근거로 삼은 것은 아쉽다. 노동자의 건강권 역시 헌법상 기본권(헌법 10조, 32조3항, 34조 등)이라는 점에서 장애인 접근권과 달리 볼 이유도 찾기 어렵다.
Ⅴ. 결론-급식실의 안전은 사용자와 국가의 몫
대상판결은 학교급식실 조리노동자의 폐암이 개인의 불운이나 부주의가 아니라, 작업환경을 정비할 책임을 진 사용자, 곧 지방정부이자 교육청의 보호의무 위반에서 비롯됐음을 명확히 확인했다. 예견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법령 준수 항변과 시효 및 과실상계 항변을 모두 배척한 것은, 급식실뿐 아니라 규제 목록 밖의 유해인자에 노출된 다른 현장의 직업병 소송에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대상판결은 원고들과 피고 지자체 모두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그 사이 제도도 일부 정비됐다. 학교급식실은 2020년 1월부터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면 적용 대상이 됐고, 2026년 2월19일 공포된 개정 학교급식법은 ‘학교급식종사자’를 처음 법률에 정의하고, 국가와 지자체에 그 건강과 안전을 위한 시책 의무를 지웠으며, 1명당 적정 식수인원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교육감이 배치기준을 세우도록 했다(2027. 2. 20. 시행, 식수인원 기준은 2027. 7. 1. 시행).
그러나 과제는 남아 있다. 적정 식수인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인력 기준만으로는 조리흄 노출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없다. 조리흄 포집을 위한 제어풍속 등 환기설비의 공학적 기준과 조리방식·식단 개선이 함께 제도화돼야 한다. 대상판결이 확인한 사용자의 보호의무가 현장에서 실제로 이행되려면, 이제 국가가 그 기준을 마련할 차례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