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6-10-2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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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리뷰]아리셀 참사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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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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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번호 : 대법원 2026. 10. 20. 선고 2026도7102 판
신하나 입력 2026.10.28 06:30
Ⅰ. 들어가며
지난 20일 대법원은 23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한 아리셀 참사 사건에서 검사와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대표이사 박순관은 징역 4년, 본부장 박중언은 징역 7년이 확정됐다. 특히 박순관에 대한 형량은 1심 징역 15년에서 항소심 징역 4년으로 대폭 감경됐다. 이 판결은 경영책임자의 범위, 인과관계 및 위험성평가에 관한 법리를 제시했지만, 산업안전보건법령의 제한적 해석과 형사책임의 실효성에 중대한 의문을 남겼다.
Ⅱ. 산업안전보건법령의 해석과 종전 판례의 불일치
원심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17조를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의 각 층에 비상구를 설치하도록 한 규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18조의 비상통로도 사전에 특정된 고정적인 통로를 중심으로 해석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을 시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령은 산업현장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규범이다. 다양한 작업장 구조와 위험의 양상을 모두 열거할 수 없으므로 안전조치 규정에는 일정한 추상성과 개방성이 불가피하다.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이 모든 안전조치의 형태를 법령에 빠짐없이 명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8도12177 판결은 통상적인 해석으로 금지행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추상적 개념도 허용된다는 취지이고,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9도12986 판결도 안전보건규칙의 개방적 문언을 곧바로 불명확하다고 보지 않았다. 특히 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0도3996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령의 입법목적, 작업의 성격, 예상되는 위험 등을 종합해 실질적인 예방조치가 이뤄졌는지 판단하도록 했다. 엄격해석은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난 유추해석을 금지하는 것이지 목적론적·체계적 해석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업종과 생산공정, 사업장의 규모와 구조가 매우 다양하다. 2024년 광업제조업조사에 따르면 종사자 10명 이상 제조업 사업체의 약 97.3%가 중소기업이며, 2023년 산업재해 현황에서도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약 61.6%가 50명 미만 사업체에서 발생했다(전 산업 기준). 이처럼 다양한 산업현장의 작업환경과 위험요인을 법령에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업안전보건법령이 일정한 추상성과 포괄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원심과 대법원처럼 법령의 문언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다면, 사업장 형태가 다양할수록 노동자 보호의 공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령의 예방적 기능과 규범적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해석이다.
아리셀 공장 3동 2층은 가벽으로 구획돼 있었고 다량의 리튬전지가 적재돼 있었으며, 사망 피해자 다수가 패킹룸 안쪽에서 발견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대피 가능성을 중심으로 안전조치의무를 판단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산업현장의 구체적인 위험과 실질적 예방조치를 중시해 온 종전 판례의 해석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고, 그 이유조차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Ⅲ. 경영책임자의 책임과 직접적 인과관계
대법원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2조9호 가목의 사업총괄책임자와 안전보건업무책임자를 병렬적·열거적으로 해석해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 선임만으로 대표이사가 당연히 책임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다만 중대재해 원인이 어느 의사결정 영역에 속하는지에 따라 책임을 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향후 대표이사는 위임을, CSO는 예산·인력에 관한 권한 부족을 내세워 각자 책임을 축소하는 근거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 책임의 병존이 책임의 분할이나 양형상 상쇄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특히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확보의무 위반과 사망 결과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인정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동안 대검찰청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2022년, 250~258쪽)과 일부 법조계에서는 ①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먼저 인정하고, ② 경영책임자가 그러한 위반을 방지하지 못한 관계를 인정하는 ‘2단계 인과관계론’을 제시했다. 다만 대검찰청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매개되지 않는 사건의 기소 가능성을 별도로 검토했다.
이번 판결로 산업안전보건법상 개별 조치의무 위반을 반드시 매개해야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가 성립한다는 전제는 유지되기 어렵게 됐다.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의무는 독자적인 의무이며, 그 위반과 사망 사이의 구체적 인과관계가 입증되면 개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의 성립 여부와 별도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물론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미비했다는 추상적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자동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법리는 특별형법의 독자적 책임구조에서 당연히 도출돼야 하는 해석이지, 판결 전체의 문제점을 상쇄하는 성과는 아니다.
Ⅳ. 위험성평가와 시행령 4조3호의 양면성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3호 본문의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가 단순한 위험성평가 서류가 아니라, 사업장 전반과 종사자 전체를 대상으로 실제 위험에 맞게 설계된 전사적 안전보건관리체계라고 판단했다. 아리셀의 위험성평가 규정과 계획에는 리튬1차전지 제조공정의 폭발·화재 위험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았고, 2023년부터 위험성평가도 실시되지 않았다. 형식적 규정의 존재만으로 의무 이행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은 타당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같은 호 단서의 간주규정에 관해 위험성평가 절차의 마련·실시·결과 보고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점검의무’뿐 아니라 ‘업무절차 마련의무’까지 이행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해석했다. 원심의 반대 취지 해석을 바로잡되, 이 사건에서는 실제 평가가 없었으므로 유죄 결론을 유지한 것이다. 다만 필요한 후속 ‘조치의무’는 간주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 해석은 실질적·전사적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를 통해 그 구축의무까지 간주하는 긴장을 안고 있다. 향후 형식적 평가와 보고가 면책의 통로로 작용하지 않도록 위험성평가의 실질과 개선조치 이행을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
Ⅴ. 양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하력
박순관의 형량은 징역 15년에서 4년으로 감경됐다. 형사소송법 383조4호상 10년 미만의 징역형에 대한 단순 양형부당은 상고이유가 될 수 없어 대법원의 양형심사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중대재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은 기본영역을 징역 1년 6개월~4년, 가중영역을 3~10년으로 제시했다. 기본영역의 상당 부분이 집행유예 가능 형량과 겹친다는 점에서 특별형법의 예방적 위하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직접적인 양형심사가 제한된 상황에서 사법부의 양형정책과 항소심의 형량 평가가 유사한 방향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을 특별감경인자로 중시한 것은 유족의 경제적 곤궁과 기업과의 교섭력 격차, 합의의 자발성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금전적 배상이 사전적 안전확보의무 위반에 대한 공적 책임을 대체할 수는 없다.
Ⅵ. 결론-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사실상의 위헌 선언
본 판결은 직접적 인과관계와 전사적 안전보건관리체계의 독자성을 확인하면서도, 위험성평가에 따른 의무이행 간주 범위를 확대했다. 더욱 심각하게는 산업안전보건법령의 예방적 해석 원칙을 충분히 관철하지 않았고, 책임 분산의 가능성과 낮은 형량이 결합해 특별형법의 실효성을 약화시켰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사실상의 위헌 선언’에 준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법률의 형식적 효력에 관한 위헌결정이 아니라, 입법부가 의도한 형벌의 위하력과 사전예방 기능이 사법적 해석·적용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무력화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유족들과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무거운 처벌이 아니라 누가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는지 밝히고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법적 신뢰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 신뢰를 무너뜨렸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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