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5-22 08:23
11월13일을 국가가 기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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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구센터
 조회 :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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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으로 치러지게 된 21대 대통령선거. 노동자 출신 후보가 두 명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소년노동자’였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학출노동자’였다. 물론 두 후보의 노동 공약은 몹시 다르다.
그럼에도 ‘전태일’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다 같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이 후보는 “소년노동자 이재명의 시선으로, 전태일 열사의 심정으로” 노동 문제를 바라보겠다고 약속했고, 김문수 후보는 “전태일이 노동운동 시작의 계기였다”고 털어놓았다.
격세지감이다. 세상에서 가장 기울어진 ‘반노동’ 운동장인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양당 후보가 모두 노동자 출신으로 채워질 줄이야.
전태일이 선거판에서 호명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대통령은 사회적 통합의 의무를 진다. 전태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새 정부를 상상한다.
모두가 노동자 출신 후보?
그동안 전태일이 분신항거한 11월13일을 많은 이들이 추모해 왔다.
불이 붙은 전태일의 몸을 겉옷으로 덮어 끄려고 애썼던 전태일의 친구들, 엄청난 돈의 회유를 물리쳤던 이소선 어머니와 가족, 정보기관의 폭압을 뚫고 보름 만에 청계피복노조를 만든 조합원들, 대학생 친구가 한 명 있으면 좋겠다는 전태일의 말에 나섰던 대학생과 지식인들, 그리고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을 외치며 당신이 못다 굴린 덩이를 지금도 굴리는 노동자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전태일은 기업가도 꿈꿨다. 교복을 기성복화하겠다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대학노트 25쪽에 빽빽이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웠다. 제품은 오토바이로 3시간 이내 배달하고, 고객은 자동차로 모셔 오고…. 이런 영업전략은 오늘날 기업들이 실행하고 있다.
전태일 앞에서라면 노사도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않을까. 전태일의 뜻을 이어 사회운동가로 거듭났던 이소선 어머니는 늘 “손잡아라, 하나가 돼라”고 힘줘 말씀하셨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만고불변 진리다. AI의 힘이 학습과 연결에서 나오듯이, AI를 만든 인류는 서로 배우고 연대할 수 있다.
해마다 11월13일이면 국회 앞마당에서, 또는 운동장에서, 곳곳의 크고 작은 회의실에서 노사정과 여야가 머리를 맞댄다. 불안정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 ‘오늘의 전태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그려 본다. 하지만 ‘노란봉투법’ 하나 여태껏 처리하지 못한 국회다.
‘전체의 일부’ 또는 ‘나의 또 다른 나’로 서로가 용해되는 모습을 상상하던 전태일처럼 배가 고파진다. 그 수많은 노사정 테이블 가운데 단 하나라도 전태일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는 것일까.
전태일 정신을 국정 운영철학으로
공사판에서 등짐을 지던 전태일은 기름에 절은 운전수 모자를 쓰고 일하던 노동자를 보면서 “사실은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그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걸세”라고 표현하며 소외를 포착한다. 그리고 “한 인간이라도 ‘부스러기’로 밀려나는 일이 없는, 한 사람이라도 남김없이 그 인간적인 관심을 존중받는 질서”를 전태일은 꿈꾼다.
전태일이 준수하라고 외친 최저 기준인 근로기준법으로부터도 소외된 노동자, 노동자보다 더 장시간 일하는 자영업자, 우리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는 대기업…. 수직적 산업구조 때문이겠지만, 우리 사회·경제 주체들은 너나없이 불협화음을 토해낸다.
불평등·양극화·저성장의 위기 앞에서 벼랑 끝으로 몰린 대한민국. 전태일이 꿈꿨던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인간적인 존중과 대접을 받는 사회 구현을 새 정부가 국정운영 철학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전태일은 노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주의 표상만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풍요와 안락을 누리기까지 누구의 땀과 피와 눈물이 있었는가.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감사를 차리는 날로 11월13일을 기념하자. 함께 기념해야 뜻을 모을 수 있다. 함께 기억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11월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화합과 상생에 나서는 새 정부를 상상한다.
전태일재단 박미경 기획실장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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