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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12-30 11:18
[판결로 본 2025년] ‘누가 사용자고 노동자인가’ 현미경으로 본 사법부
 글쓴이 : 동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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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8월27일 불법파견과 교섭거부 등을 이유로 원청 현대제철을 집단 고소하기 위해 서울 대검찰청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김미영 기자 입력 2025.12.29 07:30

책임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2025년 노동판결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사용자성, 불법파견, 근로자성, 중대재해, 임금체계에 이르기까지 대법원과 하급심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보다 정밀한 답을 찾는 여정을 보여줬다.

사용자성·원청 책임, 대법 공백 속 ‘사실상 기준’ 형성

내년 3월 노란봉투법(2·3조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을 앞둔 올해, 대법원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직접 다룬 판결은 없었지만, 하급심 판결들이 사실상 기준 역할을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백화점·면세점 하청노동자 사건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2024구합72896). 매장 운영 전반을 통제하면서도 교섭 책임을 부인해 온 구조에 제동을 건 판단이다.

현대제철 사건에서도 법원은 원청이 하청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봤고(2022구합69230), 한화오션 사건에서는 성과급·학자금·노동안전까지 교섭 의제로 포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2023구합55658, 2023구합56231 병합). 사용자 개념을 형식이 아닌 실질적 지배력 중심으로 확장한 판결이다.

하급심 흐름과 대조적으로, 원청 사용자성을 둘러싼 대표 사건은 대법원에서 장기간 계류하면서 현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원청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청구 소송(2018다296229)은 대법원에 넘어간 뒤 7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노란봉투법 시행 이전에 이 사건을 선고할 경우, 해당 법리는 고용노동부 지침의 핵심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해가 바뀌도록 전원합의체가 결론에 이르지 못하면서,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누가 노동자가 아닌가’ 확대되는 ‘근로자성’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올해도 잇단 판결을 통해 근로자성 판단의 중심을 근로계약서와 ‘지휘·명령’이라는 전통적 요소에서 벗어나, 시장 접근과 노동구조에 대한 통제 여부로 옮겼다. 대법원은 직업소개업체를 통해 요양병원에서 일한 간병인 사건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다(2024다307571). 간병인은 직업소개업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 근무 배치와 업무 내용, 환자 이송 방식은 병원이 정하고 있었다. 병원이 사실상 노동 제공의 내용을 지휘·감독하고 있었던 점이 근로자성 인정의 핵심 근거였다. 이 판결은 ‘소개’나 ‘위탁’이라는 외형이 실질적 사용자 책임을 가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근로자성 판단의 기준은 분명해졌다. 서울고법은 뮤지컬 앙상블 배우들이 예술인활동증명을 신청했거나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2023누66179)했다. 공연 일정과 연습 시간, 출연 내용이 제작사에 의해 정해졌다면 근로자성 판단은 가능하다는 취지다. 이는 예술 노동을 ‘자유계약’으로만 보던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로 평가된다.

다만 근로자성 판단이 멈춘 곳도 있다. 대법원은 사회복무요원에 대해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했다(2025두32338). 병역의무 이행이라는 제도적 성격과 국가에 대한 복무 관계를 고려할 때, 일반적인 고용관계와는 구별된다는 판단이다.

재해의 책임은 무겁지만 처벌은 여전히 가벼운

올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판결은 처벌 수위의 높낮이보다 책임의 성격과 작동 구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춘천지법 영월지원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단순한 현장 조치 의무가 아니라, 인적·물적·제도적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운영해야 하는 관리적 의무로 규정했다(2023고단442).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판단의 기준점을 개별 안전조치의 미흡이 아니라 경영 차원의 관리 체계로 옮긴 판결로 평가된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청의 사업주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2023고단1699)하기도 했다. ‘위험성평가’ 절차를 마련해 실시하고 보고받았다는 점이 무죄의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반면 SPL 제빵공장 사건에서는 노동자 사망이 연속적으로 발생했고 피해자와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법원은 대표이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2023고단1983).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이 선고되며 양형 기준에 대한 논쟁을 남긴 판결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리셀 참사 사건에서는 대표이사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가운데 최고형이 나왔다(2024고합833, 2025고합24, 529 병합). 대규모 인명 피해와 반복된 안전관리 실패를 중대하게 본 결과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낮은 형량으로 입법 취지가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논란이 이어지면서 대법원 양형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복잡해진 불법파견 판단 기준

2025년 불법파견 판결의 판단 기준은 보다 복잡해졌다. 대법원은 금호타이어 곡성공장 구내식당 조리·배식 업무에 대해 타이어 제조업과 명백히 구별되는 독립 업무라며 불법파견을 부정했다(2022다276369). 반면 현대차 남양연구소 시험차량 운전업무는 연구개발 절차에 편입돼 지휘·명령 아래 수행됐다며 불법파견을 인정했다(2021다218755). 셀트리온 방역 업무도 표준작업지침서(SOP) 준수와 참관만으로는 지휘·명령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파견을 부정했다(2025다213424). 삼성전자서비스 사건에서는 2년 초과 파견에 따른 직접고용 간주를 재확인했다(2022다166). 업무의 핵심성, 조직 편입 여부, 통제 방식에 따라 파견이냐, 도급이냐 판단이 갈렸다.

통상임금, ‘소정근로 대가성’ 중심으로 재정렬

지난해 통상임금 새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현장에서는 여진이 이어졌지만 사법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대법원은 출근율 조건·재직조건이 붙은 상여금이라도, 그 조건이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노동자라면 통상적으로 충족 가능한 성격이면 통상임금성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2019다204876)했다. 재직자 조건은 지급시기일 뿐이므로, 상여금의 정기성·일률성·고정성 판단은 별도로 해야 한다는 취지다. 통상임금이 ‘고정성’ 중심에서 ‘소정근로 대가성’ 중심으로 재정렬되면서, 임금항목과 취업규칙을 둘러싼 노사 간 공방도 치열해졌다.

임금체불액이 2조원대에 육박하는 가운데 임금 미지급에 대한 형사 책임도 한층 무거워졌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398억 원의 임금을 체불한 혐의로 기소된 박영우 대유위니아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며, 임금 체불이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계를 침해한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했다(2024고합89).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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