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및 지명유래

대송동 행정복지센터

history

  • 울산광역시 동구 대송동1997. 07. 15
  • 1993. 03. 13신청사 개청
  • 경상남도 울산시 동구 대송동 (화정동에서 분동)1992. 01. 20
  • 1988. 01. 01경상남도 울산시 동구 화정동 (동구 승격)
  • 경상남도 울산시 중구 화정동 (일산동에서 분동)1985. 10. 15
  • 1911.경상남도 울산군 동면 월산동
  • 경상남도 울산군 동면 목장동1910. 10. 01
  • 1894. (조선 고종 31년)경상남도 울산군 목장동
  • 경상남도 울산도호부 목장동1599. (조선 선조 32년)
  • 1786. (조선 정조 10년)목장리

대송동(大松洞) 지명유래

대송동은 조선 정조 때 목장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고종 31년에는 목장동이라 하였다. 일제 시대인 1911년에는 화정동·일산동과 합쳐 월산동(月山洞)이 되었다가,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는 화정동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후 1992년 화정동으로부터 분리되어 대송동(大松洞)이 되었다.옛날 이곳에는 송림이 울창하여 이로부터 '大松'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원래 이마을의 자연 부락으로는 갓안, 새터, 시이골, 댄밖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위치마저 가늠할 수 없게 변하고 말았다.

자연부락

  • 갓안 마을 : 나무가 울창한 숲을 '갓'이라 한다. 따라서 '갓안' 마을이란 숲속의 마을이란 뜻이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마을로 현재의 대송동사무소 남쪽 일대에 있었다.
  • 새터 마을 : 갓안 마을의 동쪽에 있었으며,새로 형성된 마을(새마을)이라는 뜻이다.
  • 시이골 마을 : 대송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으며, 마을 입구에 연자 방아간이 있 어 이 일대의 곡물을 도정하였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어 '사이골'인데 이것이 변하여 '시이골'이 되었다. 지금의 화정초등학교 일대에 있었다.
  • 댄밖마을 : 조선 시대에 이곳에는 목장이 있었으며, 이 목장 대문밖의 마을이라 하여 '댄밖 마을'이라 하였다. 지금의 울산생활과학고등학교 자리가 이곳이다.

골짜기, 들

  • 붕어지골 : 봉화골의 서쪽 골짜기로 숲이 울창했으며, 부엉이가 우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현재 대송현대아파트 107동 앞 도로 일대이다.
  • 도완장들 : 새터 앞의 들녘으로 대청천의 물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둑을 쌓은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옛날 목장이 있을 때는 이곳으로 말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목책과 돌담을 쌓아 놓기도 했다. 지금의 대송 농수산물 시장 일대를 말한다.
  • 눌미들 : 양수장 서남쪽의 들녘으로, '눌미'는 길고 평평하다는 뜻이다.
  • 안목장 : 새터 마을의 서쪽 산등성이에 있었다. 현재 대송 목욕탕이 있는 곳이다.
  • 구당터(舊堂址) : 수리직골을 넘어 염포재에 이르면 길 가운데 큰 당산나무와 돌무더기가 있었다. 이 돌무더기와 당산 나무를 성황당이라 하였다. 옛날 일산·전하·대송·번덕·방어진 사람들이 울산읍의 5일장에 갈 때는 이 성황당을 지나 다녔으며, 그때마다 돌멩이를 하나씩 쌓아 큰 돌무덤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나무와 돌무덤이 거의 없어지고 흔적만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 기타 :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대성골(大成谷), 가파른 능선의 수리직골 등 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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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