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및 지명유래

일산동 행정복지센터

history

  • 일산동 주민센터 이전 개소2018. 03. 02
  • 2001. 02. 26일산동 주민자치센터 개소
  •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1997. 07. 15
  • 1988. 01. 01울산시 동구 일산동
  • 일산동에서 일산동, 화정동 분동1985. 10. 15
  • 1962. 06. 01울산시 방어진출장소 일산동
  • 울산군 방어진읍 일산리1936. 07. 01
  • 1910. 10. 01울산군 동면 일산리

일산동(日山洞) 지명유래

일산동은 방어진의 댕바위산(등대산)과 어풍대 사이에 있는 깊은 만(灣)을 형성한 마을로 바닷가에는 넓은 백사장이 있다. 조선 정조조에 일산진리(日山津里)라 했다가, 고종 31년(1894)에 일산동이라 고쳐 부른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산동은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당시 화정동의 일부를 편입시켰다. 일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신라 때 이곳으로 유람 온 왕이 일산(日傘)을 펼쳐놓고 즐겼다는데서 비롯된 것인데, 뒤에 일산(日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일산 해수욕장 일대에 있는 어풍대·고늘개·놀이창·여기암·대왕암 등에 얽힌 지명의 유래나 전설을 종합해 볼 때 이곳은 신라왕들이 즐겨 찾았던 명승지였으며, 여기에 얽힌 여러 사연들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섬-여기암(女妓岩)

일산 해수욕장 앞바다에 있는 바위섬으로 민섬, 혹은 미인섬으로도 불린다. 이 섬이 여기암이나 미인섬(美人島)으로 불리게 된 것은 신라 때 왕실에서 궁녀들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뱃놀이를 즐겼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바닷가

  • 화진 : 신라 시대 때 왕들이 경치좋은 이곳을 자주 찾아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궁녀들을 거느리고 뱃놀이를 하는 모습이 마치 꽃놀이 하는 것 같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이 꽃놀이 하는 바닷가의 뜻을 가진‘꽃놀이 갯가’가‘고늘개’가 되었고 이것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화진(花津)’이다. 원래 고늘개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150여 년 전부터 지금의 바닷가 마을로 이주해 왔다. 그리고 이 고늘개 동쪽 바닷가에서 신라왕 일행이 춤추며 놀았던 곳을‘놀이창’이라고 한다. 이제‘고늘개’,‘화진’이라는 이름은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 이름 등에 일부 남아 있다.
  • 어풍대 : 일산해수욕장에서 바닷가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높은 언덕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전망이 뛰어난 곳이어서 삼국통일 후 신라의 왕들이 즐겨찾는 명소였다고 한다.‘어풍대’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곳을‘동대(東臺)’라고도 하며, 끝머리를‘동대끝’이라고 한다.
  • 군수밭 : 일산마을 동쪽의 군수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군수’는‘군소' 라고도 하는 해산물로 해류가 빠른 곳에서 잘 자라며,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 고래듬 : 일산마을 동쪽 바다 속에 있는 바위로 마치 고래모양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다. 바다 속에 있는 바위를‘듬’이라 한다. 이 주변은 해류의 이동이 빠르고 수심이 깊어 큰 고기떼가 많이 지나는 곳이다.
  • 일산해수욕장 : 이곳은 등대산과 접하고 있어 해수욕과 함께 울창한 송림을 거닐 수 있어 천혜의 명승지였다. 옛날에는 이곳에 백합조개가 많았으나 지금은 멸종된 상태이다.
  • 안동네 : 등대산 입구 등룡사 부근의 마을이다.
  • 기타 : 넓적한 바위가 있는 넙섬, 닮은 모양의 두 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제듬, 조개모양의 조개듬, 지네모양의 지네듬 등의 바위는 모두 일산 동쪽의 바다 끝에 있었는데, 현대중공업이 들어서면서 매립되고 말았다.

일산진마을

  • 상당과 하당 : 옛날 일산진 마을에는 상당(上堂)과 하당(下堂)이라는 동제당(洞祭堂)이 있었는데, 상당은 현재의 바닷가 마을에 있었고 하당은 고늘개에 있었다. 상당에는 백신당(百神堂)을 모시고 동제를 지냈으며, 하당에는 삼신령(三神靈)을 모셨다.
  • 장승배기 : 마을 입구에 장승이 있었던 곳이다.
  • 돌안 : 어풍대에서 일산진 마을까지의 바다로 수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일산동의 내륙쪽

  • 오좌불 : 1989년의 현대중공업 노사 분규 때 가장 격렬하게 대치하여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당시 많은 언론사들이 오좌불을 한자로‘五座佛’로 표기하여 마치 다섯 부처가 있었던 골짜기로 착각을 일으키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옛날 이 일대의 숲속에는 너댓집이 있었고 여기서 전하동까지 바닷가는 하얀 모래가 유난히 곱던 백사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언덕에는 외딴집 한 채가 있을 뿐이었다. 꼬불꼬불한 신작로를 따라 걸으면 전하동까지 30 ∼ 40분은 족히 걸렸으며, 도로 위로는 공동묘지가 있어 음산한 분위기의 오지였다. 이‘오지의 벌판’이 변음하여‘오좌불'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외골 : 일산 서쪽에 있었던 작은 골짜기인데 옛날 이 지방에서는 몹쓸병(천연두, 호열자, 학질…)으로 사람이 죽으면 이곳에 매장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외로운 골짜기’였는데 이것이 줄어‘외골’이 되었다. 일산 별신굿을 할 때는 이곳‘외골’에서 죽은 자의 넋을 모시는 풍습이 있었다.
  • 산시이 : 일산동과 전하동 경계지점에 있었던 작은 말 목장을 산성(山城)이라 했는데, 이것이 변하여‘산시이’가 되었다. 일제시대 때 이곳에는 배밭이 많았고 그 맛 또한 뛰어났다.
  • 찬물락(冷水井) : 여름에는 찬물이 솟아나고 겨울에는 온수가 솟아나던 곳으로 지금의 일산파출소 부근이다.
  • 까치밥거랑 : 일산동에서 해수욕장으로 흐르는 시내(川)다. 이 시내는 항상 물이 풍부해 가뭄에도 마르는 법이 없었으며, 시냇가에는 찔레를 비롯한 열매가 많아 까치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들었다.‘거랑’은‘시내’의 사투리이다.
  • 율미들 : 까치밥거랑 일대의 논이 있었던 들판으로 바다와 가까워서 수해가 잦았다. ‘율미’란 논이 물 속에 자주 잠긴다는 뜻이며, 원래 이름은 멱미들이었다.
  • 번덕(番德) : 산비탈을‘번덕’혹은‘뻔디기’라고도 한다. 일산 해수욕장에서 (주)현대 중전기로 넘어가는 언덕을 번덕이라 한다.

울기등대 일대

작은 반도라 할 수 있는 이 울기등대 바닷가는 강한 파도에 의해 오랫동안 침식되어 온갖 기암괴석들로 가득차 있으며, 이러한 바위들은 나름대로 온갖 이름과 전설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의 높이는 해발 46m이며, 울창한 소나무들은 곰솔(해송) 나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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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 20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