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울산광역시 동구 전하 2ㆍ3동 통합2009. 01. 01
- 1997. 07. 15울산광역시 동구 전하2동
- 울산시 동구 전하 2ㆍ3동으로 분동1995. 03. 02
- 1988. 01. 01울산시 동구 전하2동
- 울산시 전하1ㆍ2동 분동1983. 10. 01
- 1962. 06. 01울산시 전하동
전하동(田下洞) 지명유래
원래 전하동은 아름다운 포구로 둘안산 남쪽 바닷가의 작은 어촌이었다. 전하동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조선 현종 13년(1672)으로 전하포(田下浦)라 하다가 고종 31년(1894) 부터 전하동이라 하였다. 일제 시대인 1911년에도 전하동이라 하였고,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화정동 일부를 포함시켜 전하리라 하였다. 현재 전하동은 1,2동으로 다시 분동(分洞)되었으며 인구 밀도가 대단히 높다.
자연부락
- 전하 마을 : 전하 마을은 그 말 뜻이 '밭 아래 마을'이다. 옛날 전하 마을에는 산 비탈에 밭이 많이 있었으며, 그 아래 바닷가로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논이 없 던 전하 마을 사람들은 대개 어업에 종사하였다.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던 이 마을을 이 지방 사람들은 '바드래'라 불렀다. '바드래'는 '밭아래(田下)'를 발음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다.
- 녹수(綠水) : 전하동 동북쪽 둘안산의 능선과 포구에 자리잡고 있었던 마을이다. 이 마을의 지명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이 마을 조금 북쪽에 있는 낙화암에 유람 왔던 처녀가 바다에 떨어져 익사하고 말았다. 얼마 후 이 죽은 처녀가 입고 있었던 녹색의 비단 저고리 소매만이 이곳으로 떠밀려 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녹수금의(綠軸錦衣)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줄어 '녹수(綠抽)'가 되었다. 이 마을은 현대중공업이 들어서기 직전인 1970년 당시까지만 해도 67가구 250명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현대중공업의 1, 2도크가 있는 곳이다. 한편 녹수 마을과 전하 마을을 이어주던 둘안산에는 현대중공업 영빈관이 자리잡고 있다.
- 명덕(明德)마을 : 바닷가에서 떨어진 산간 마을이었다. 농업을 위주로 하던 이 마을의 당산나무가 현재 현대중공업 본관 건물 앞에 있는 노송(老松)이다. 현대중공업 건설 당시 이 나무도 베어 버리려 했으나 정주영 회장의 만류로 남게 되었으며, 1년에 한번씩 신목제(神木祭)를 올리고 있다. 명덕을 혹은 '대편(大便)'이라고도 하는데, 밝고 편안하다는 뜻이다.
산-둘안산(頭龍山)
녹수 마을 남쪽의 산으로 해발 41m이다. 이 산은 해풍으로부터 녹수, 전하마을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산 밑 바닷가로는 검은불, 사태밑, 듬벙개, 진바람, 고래개안 등의 이름을 가진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널려 있었다. 산등성이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동쪽 언덕의 잔디밭은 놀이터와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의 달집 태우기는 이 고장의 이름난 행사였다. 또한 이 산 밑의 바닷가는 해산물이 풍부했으며, 특히 미역이 유명하였다. 현재 이 산의 정상에는 현대중공업 영빈관이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다.
골짜기, 고개
- 돌안골 : 지금의 울산대학교병원 바로 위에 있는 명덕 저수지 일대를 말한다. 이 골짜기로부터 시냇물이 발원하여 병원과 현대중공업 정문을 지나 바다로 흘러 들어갔는데, 이것을 명덕천이라 하였다.
- 진성골 : 임진왜란 때 이 지방 의병들이 일본 침략군을 물리친 골짜기라 하여 '전승골(戰勝谷)'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하여 '진성골'이 되었다. 지금의 동부경찰서 일대를 말하며, 이 골짜기에 있었던 성을 '진성골 산성'이라 하였다.
- 시리이재, 장터걸 : 진성골 산성 근처의 산길로 전하, 녹수, 명덕 마을 사람들이 울산장을 보러 다니던 고갯길이다. '시리'는 '시루'의 사투리이다. 그리고 이 길 을 시장 보러 다니던 길이라 하여 '장터길'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장터걸' 이 되었다.
- 순국실(殉國室) :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의병들의 영령을 모신 사당이 건립되었는 데, 이곳을 '순국실'이라 하였으며, '순구실'로 변음되었다. 명덕에 있는 농협 방어진 지점 앞을 말한다.
- 범잔채골 : 다이아몬드 호텔 북쪽 골짜기로 범(호랑이)이 잔치를 벌인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바닷가
- 목섬(項島) :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었던 곳이다. 이곳에 는 멸치잡이 후리막과 노송(老松)이 있어 그네뛰기를 하기도 했던 곳으로 지금의 현대중공업 제1도크 자리이다. 그리고 그 앞바다를 특별히 '목심바다(項深海)'라 하였으며, 이곳에 있었던 두꺼비 모양의 바위를 '두꺼비바위'라 하였다.
- 기타 각종 바위들 : 돔바위(혹돔방), 근방, 일곱덩거리(일곱덩어리의 바위), 진줄 바위(긴 줄같이 늘어선 바위), 까치듬(까치를 닮은 세 바위), 달바위(평평하게 넓 은 달 모양의 바위)
- 선사시대 고래뼈 발견지 . l996년 1-월 동구 전하동 동부경찰서 남방 100m지점 해안으로부터 약 250m 지점에서 발견된 고래뼈는 과거 방어진이 고래 잡이로 전국에 명성을 날리던 시절을 증명하는 귀중한 유물이 되고 있다. 부산대학교 지질학과 김항묵 교수로부터 3천년 전의 고래 유골이라는 학술적 고증을 거친 이 고래뼈는 흑색 점토층 지하 10m에서 발견되었으며, 길이 30m, 무게 30톤의 참고래 요골로 판명되었다. 동구청에서는 지역 문화 및 교육적 가치를 판단, 이 고래때를 민원실에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