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및 지명유래

남목2동 행정복지센터

history

  • 울산광역시 동구 남목2동 신청사 개소2005. 10. 27
  • 2001. 06. 01울산광역시 동구 남목2동 자치센터
  • 울산광역시 동구 남목2동(광역시 승격)1997. 07. 15
  • 1988. 01. 01울산시 동구 남목2동(동구 승격)
  • 울산시 남목2동(남목1ㆍ2동 분동)1979. 01. 01
  • 1979. 01. 01울산시 남목1ㆍ2동으로 분동
  • 울산시 남목동1972. 10. 01
  • 1962. 06. 01울산시 방어진 출장소(울산시 승격)

서부동(西部洞) 지명유래

서부동은 앞불내(南木川)라는 이름으로 이미 조선 초부터 등장하며, 예종 1년(1469)에는 적진리(赤津里)라 하였다. 그후 정조 때는 남옥리(南玉里)와 한채리로 갈라졌다.그후 고종 31년(1894)에는 옥류천 동쪽을 동부동, 그 서쪽을 서부동이라 하였다. 한편한채리는 대편동(大便洞)으로 고쳤다가 다시 대편동(大片洞)이라 하였다. 일제 시대인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서부동과 대편동을 합쳐서 서부리라 하였다. 이곳은 울산 목장의 감목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동부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전까지동구 지역에서 가장 중심지 였다.

산, 바위, 들

  • 학인산 : 마골산 아래 노송들이 숲을 이룬 곳에 학이 둥지를 른 곳을 말한다.
  • 제기들 : 목장에서 기르는 말들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도록 기원하는 제사를 1 년에 한번씩 지냈다고 한다. 당시 제사를 지내던 제당(祭堂) 근처의 논과 밭을 '제기들' 이라 하였다.
  • 동뫼 : 제기들 가운데 있는 동산을 '동뫼'라 하였다. 바로 옆에 '큰동뫼'도 있었다.
  • 고사집터 : 남목초등학교 아래로는 논밭이 있었고, 이 들의 가장자리 한 곳에 상여 를 보관해 두는 곳이 있었다. 이 상여는 송정계(松正契)에서 관리하였다. 우리 고 장에서는 옛날부터 여러 종류의 친목계가 조직되어 상여, 연자방아, 제당 등을 관리·운영하여 왔다. 대표적인 친목계로는 동계(東契), 서계(西契), 송정계(松正契), 화정계(華亭契) 둥이 있어 200년의 전통을 이어왔다.

남목목장

현재 울산 동구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현대중공업을 들지만, 옛날 이 지역을 상징했던 것은 목장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것이 목장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 지역 목장의 지휘 본부가 있었던 곳이 서부동이다. 그리고 그 관리 책임자를 감목관이라 했는데 6품 벼슬이었다. 조선 시대 울산 지역은 모두 도호부의 관할하에 있었지만 목장 관내에 있는 목민들을 지배하는 권한은 감목관에게 있었다. 목민들은 물론이고 목자나 목장의 둔전을 경작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목장의 역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울산부의 역을 2중으로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남목 목장을 '울산 목장' 혹은 '방어진 목장'이라고도 하였다. 이 지역 통치권자인 감목관의 관아가 있었던 남목1동 사무소 자리에는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목조건물이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말았다. 다만 이곳에는 두 개의 선정비(善政碑)가 남아있어 이곳이 관아 자리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선정비 가운데 하나는 '목관변공정엽청덕선정비(牧官卞公廷嬅淸德善政碑)' 이고, 다른 하나는 '감목관윤공졸선정비(監牧官尹公拙善政碑)' 이다.

골짜기, 고개

  • 질마재 : 현대고등학교를 병풍처럼 에워싼 뒷산의 모습이 소등에 짐을 싣는 길마 를 닮았다고 해서 길마산(草安山)이라고도 했는데, 이 길마산 고개(길마재)의 구 개음화한 경상도 방언이 '질마재'이다. 이 길은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울산장터 를 넘나들던 지름길이었다. '질마재'는 현대고등학교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 불당골(佛堂谷) :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열암사(裂岩寺)가 이 골짜기에 있어서 '불당골'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나 여겨진다. 주거지에서 1Km 정도 산길을 오르면 자연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이 아직 남아 있으며, 그 주위로는 깨어진 기와장이 널려 있다. 또한 이 골짜기에는 만승폭포가 있어 경치가 매우 좋았던 곳이다.
  • 비석골 : 당고개(일명 남목고개) 일대의 골짜기를 '비석골'이라 한다. 이 비석골 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하나는 황경(黃驚)의 선정비이고, 또다른 하나는 열 녀비이다. 이 가운데 황경은 남목의 목관이면서도 농정에 힘을 쏟아 이 지방 사람 들로부터 칭송받은 인물이다. 원래 남목 지방은 지하에서 솟아나는 찬물과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너무 차가워서 벼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지역이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 황경은 도랑을 깊이 치도록 하여 풍년이 들게 하였다고 한다.
  • 새밭재(烏田嶺) : 동축사에서 염포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로 온갖 새들이 숲속에 서 둥지를 틀고 살았으므로 '새밭재'라 하였다. 지금의 산불 감시 초소와 헬기장이 있는 곳이다.
  • 당고개 : 흔히 우리가 '남목 고개'라고 부르는 고개로 동구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고개 꼭대기에 있는 주유소 근처의 성황당에는 오래된 고목 나무와 돌무템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 삼밭골 : 현재 현대여자중·고등학교가 있는 곳으로, 첫날 이곳은 삼밭(麻田)이 었다. 원래 이 지방에서는 삼이 많이 재배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마골산' 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현대중공업의 숙소 가운데 하나인 '삼전관'도 '삼맡골'에서 따온 것이다.
  • 기타I (골짜기) : 부안이논골(남목2동 산동네), 가사골, 범다라맨골, 무적골(水積 谷), 배낭골(배나무골), 촛대골, 대추나무골, 논골, 삼셋등, 국먼디, 화살등대, 배약 골, 큰골 등이 있다.
  • 기타 B(바위) : 장수살구돌, 투구 바위, 벼락돌, 미역돌, 송곳바위, 고동바위, 메뚜 깔돌, 솔돌(가마돌), 취양돌(남바위), 갑옷바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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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 2023-07-12